1683년(숙종 9) 건립. 총높이 368㎝, 비신의 높이 189㎝, 너비 99㎝, 두께 32㎝. 비는 신도비와 문관석 2기, 묘갈 1기, 망주석 2기를 포함한 묘역이 함께 1995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화강암제 귀부(龜趺) 위에 대리석제 비신(碑身)과 첨석(檐石 : 처맛돌)을 얹었다. 귀부는 비신에 비해 크고 둔중하며, 첨석은 추녀 단면에 구름무늬를 새기고 지붕에 쌍룡이 틀고 있는 모습을 새겼다. 조선시대 석비로 우수한 편이며 1720년(숙종 46)에 세워진 연령군신도비(延齡君神道碑) 등의 조형(祖形)이 되었다.
비문은 그의 천거를 받았던 전(前) 좌의정 송시열(宋時烈)이 지었고, 글씨는 사간원 정언 박태유(朴泰維)가 썼는데 안진경(顔眞卿)의 서풍이 가미된 단정한 해서이다. “領議政平城府院君忠翼申公神道碑銘(영의정평성부원군충익신공신도비명)”이란 두전(頭篆)은 판돈녕부사 이정영(李正英)이 썼다. 비문에는 신숭겸(申崇謙) · 신개(申槪) 등 선조들에 대해 약술되어 있고, 이어 광해군 · 인조 연간의 행력이 적혀 있는데, 특히 병자호란 때의 활약이 잘 기술되어 있다. 말미에 부인과 자손들의 약력과 명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