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경주부윤, 홍문관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충경(冲卿)
어성(漁城)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19년(중종 14)
사망 연도
1595년(선조 28)
본관
고령(高靈)
출생지
한산(韓山)
주요 관직
경주부윤|홍문관부제학|예조참판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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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경주부윤, 홍문관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충경(冲卿), 호는 어성(漁城). 한산 출신. 신희윤(申希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계(申洎)이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신영원(申永源)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윤수(李允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0년(중종 35) 사마시를 거쳐 1552년(명종 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성균관전적 등을 거쳐 1563년 정언·지평을 역임한 뒤 1565년 장령이 되었다. 1568년(선조 1)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이듬해 장령이 되고, 1571년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577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이듬해 파직되었다. 1582년 경주부윤으로 기용되어 어려운 송사를 잘 처리하였으며, 1591년 홍문관부제학에서 예조참판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의병 2,000여 명을 모집하여 왜적의 진격을 막았다.

참고문헌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아계집(鵝溪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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