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사건

  • 역사
  • 사건
  • 일제강점기
1931년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간부들이 일본경찰에 체포된 사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31년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간부들이 일본경찰에 체포된 사건.

내용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도발하고 만주전역에서 독립군토벌작전을 전개함으로써 한국독립군부대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난국을 효율적으로 타개하기 위하여 그 해 12월 17일 조선혁명당은 신빈현 하북(新賓縣河北)에 있는 교포의 집에서 긴급간부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중앙집행위원장에 이호원(李浩源)을 선임하고 각 중앙부서의 임원도 개선하였다.

그러나 이 회의장소가 통화(通化)의 일본영사관에 탐지됨으로써 기습을 받게 되었다. 일본경찰 50명과 중국보안대 100여명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그 달 19일 회의장을 포위, 공격하였다. 이 때 이 회의장의 간부들은 경계를 태만히 하고 주연을 벌이고 있어서 제대로 응전을 하지 못하고 잡히고 말았다.

이때 일본경찰에 잡힌 인사는 중앙집행위원장을 비롯, 김관웅(金寬雄)·이종건(李鍾建)·장세용(張世湧)·이규성(李奎星)·박치화(朴致化)·전운학(田雲學)·차용륙(車用陸)·김보안(金輔安)·이동산(李東山) 등 중요간부 다수였다.

조선혁명당은 중요간부 대다수가 잡힘으로써 큰 타격을 받았으나, 이에 실망하지 않고 조직을 재정비한 뒤 중국군과 연합군을 결성, 영릉가(永陵街)·신빈로성(新賓老城)·흥경성(興京城) 등지에서 일본·만주군과 복수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참고문헌

  • - 『무장독립운동비사(武裝獨立運動秘史)』(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 - 『광복(光復) -제1권 제4기-』(한국광부군총사령부정훈처 편, 194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