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바탕, 세로 44.5㎝, 가로 33.5㎝. 강릉시오죽헌 · 시립박물관 소장. 1973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임당은 대유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자식 교육에 있어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림과 글씨에 뛰어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류서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 초서 필적은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를 각각 한 장에 쓴 것으로 뒤에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글씨는 원필(圓筆)의 필세가 또렷하고 필획이 매우 정갈하다.
병풍 말미의 2폭에는 강릉부사 이형규(李亨逵, 1733∼1789)의 1744년 발문, 강원도지사 이용(李龍)의 1963년 발문, 시인 이은상(李殷相)의 1971년 발문이 있다. 이중 이형규의 발문에 따르면, 사임당의 넷째 여동생의 아들인 권처균(權處均)이 초서 6폭을 얻었는데, 그의 딸이 최대해(崔大海)란 사람에게 출가하면서 이것을 시집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 뒤 영조 때 이웃고을 사람의 꼬임으로 넘어갔는데 부사가 그 사연을 듣고 찾아서 후손에게 되돌려주었다고 한다. 근래까지 강릉시 두산동의 후손 최돈길(崔燉吉)씨 집에 전해오다가 1971년 강릉시가 양수(讓受)받아 율곡기념관에 보관하였다.
이 필적이 사임당의 진적(眞蹟)이라면 그녀는 명필이던 아들 이우(李瑀)는 물론이요 16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명서가 백광훈(白光勳) · 한호(韓濩) 등에게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 된다. 진위 여부는 차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한편, 이 필적은 1868년에는 강릉부사 윤종의(尹宗儀)에 의해 목판으로 간행, 널리 전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