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주자와 송시열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에 설립한 서원.
내용
1730년(영조 6) 4월에 관문 동쪽 1리 토성리[현 화개리]로 옮겼다. 이때 사당을 집성(集成), 강당을 신안서당, 동재를 장서각(藏書閣), 서재를 양사재(養士齋), 누각은 경광(鏡光)이라 이름한 뒤 서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동시에 송시열(宋時烈)이 영해부에 유배 중 쉬어 갔다는 이유로 유생 류중휘가 주도하고 현감 홍우집의 지원 하에 추향을 하면서 서원으로 승격시킨 것 같다. 이 무렵에 서원의 물적 기반도 구축한 것으로 보이는데, 영덕현 읍지인 『영영승람(盈寧勝覽)』에 수록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그 중 해읍(海邑) 특성 상 4척의 선박을 보유한 점이 눈길을 끈다.
1736년(영조 12) 한 차례 중수를 거쳐 1741년(영조 17) 훼철되었다가 즉시 재건이 이루어진 듯하다. 재건 직후 서원에서는 신향(新鄕)의 서인과 구향(舊鄕)의 남인 간에 서원에 봉안된 송시열 영정 소실을 두고 향전(鄕戰)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2년 6개월간 진행되면서 중앙 정계로까지 비화되었다. 어사가 파견되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신향들의 자작극으로 밝혀졌고 연루자들이 처벌되었다. 이 일은 비슷한 시기 관내의 신향들이 향교를 장악하고 구향과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그 연장선에서 발생한 향전이었다.
이후 서원의 내력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알 수는 없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당한 뒤 복원을 하지 못하였다. 조선 후기 영남 지역에서 신향 세력이 노론계 서원을 건립하는 방식과 신・구 세력 간의 충돌을 살펴볼 수 있는 서원으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영조실록』
- 『영영승람(盈寧勝覽)』
논문
- 채광수, 「18세기 말 19세기 초 영양현(英陽縣) 운곡영당(雲谷影堂)의 치폐(置廢)」(『영남학』 64,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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