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신파 계열에서 1926년 4월 ≪만세보≫와 ≪천도교회월보≫에 이어 세번째로 창간하였다. ≪신인간≫ 창간 당시 천도교는 이미 기관지 ≪천도교회월보≫를 발간하고 있었다.
그러나 1922년 손병희(孫秉熙)가 죽은 뒤 종통계승문제로 신·구파 분열이 일어나고 구파측이 이미 발행하고 있던 ≪천도교회월보≫를 관장하자, 천도교 청년당 중심인 신파측에서 별도로 ≪신인간≫을 창간하였다.
비록 교단분규로 인하여 ≪신인간≫이 창간되었다고는 하나 제호가 말하고 있듯이 사회개혁과 인간개조라는 진취적 기상을 담고 있다. 창간 권두언에서 현대사상의 혼돈과 세계의 암흑은 오직 신인간이라야 구원할 수 있다고 밝히고 내세적인 구시대의 신앙관에서 탈피, 현세지향적인 신인간을 통한 새사회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창간호부터 국문비중이 높은 국한문혼용으로 비교적 쉬운 문장의 편집을 하였다. 초기 발행인 및 편집인은 이돈화(李敦化), 발행소는 신인간사였다. 초기 집필진에는 좌우익이 모두 포함되었으나 1932년 사상논쟁으로 좌익계 필진들이 대거 탈락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신·구파가 1930년 12월 합동대회를 계기로 5년 만에 연합이 되자 통권 54호까지 내고 자진 휴간에 들어갔고 교단은 본래대로 ≪천도교회월보≫만 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1년 4개월 만에 신·구파가 다시 분열되자 1932년 5월 통권 55호부터 새로 복간되었다.
한편, 신·구파로 분열된 교단은 1940년 4월 합동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두번째 합동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1938년 ≪천도교회월보≫가 폐간된 뒤 구파측에서 발행하던 ≪중앙총보 中央叢報≫를 자진 폐간하고 ≪신인간≫과 합동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신인간≫은 명실공히 유일한 교단지가 되었다.
이렇게 출범한 ≪신인간≫은 일제강점기하에 보국안민의 기치를 든 천도교의 기본성격 때문에 민족주의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하여 잦은 폐간과 휴간을 거듭하다가 1945년 1월호를 내고 마침내 폐간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절대수의 교인들이 북한 치하에 묶이게 되자 정상적인 발간을 하지 못하다가 6·25전쟁을 계기로 북한 교인들이 다수 월남하여 교회재건 일환으로 복간을 추진하였다.
국내정세가 안정되어 속간 32호까지 발행해 오다가 재정난으로 법적 발행실적을 채우지 못하여 잠시 ≪새인간≫으로 바꾸어 1965년부터 1968년 3월까지 격월간 18호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68년에 이르러 교단중흥의 기치를 내걸고 체제를 정비하여 본래의 제호를 찾아 월간으로 간행,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로부터 대폭 증면하고 편집의 다양화를 시도하면서 천도교 신앙과 사상이념의 지면확대 내지 대중화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1977년 9월 350호부터 지면 80면을 원칙으로 하고 동학과 천도교관계 학술논문과 자료소개에 중점을 두어 편집하면서 오늘의 체제를 갖추었다.
1982년 8월호로 통권 400호를 기록한 ≪신인간≫은 ‘동학의 현대적 조명’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하는 한편 두번째의 목차집을 발간하였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신인간≫은 일제강점기에는 보국안민과 민족의식고양에 힘썼고, 8·15광복 이후에는 포교와 교리체계확립에 주력하였다. 기관지인만큼 천도교단 변천사 및 전개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