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일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김해부사, 경상도수군절도사, 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서보(恕甫)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1622년(광해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김해부사|경상도수군절도사|부총관
  • 출생 연도1554년(명종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하명 (육군사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김해부사, 경상도수군절도사, 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서보(恕甫). 아버지는 면천군수 신묵(申默)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 선전관에 등용되었다. 강진·고산현감을 역임하였다.

1595년 남부주부(南部主簿)로 있을 때, 임진왜란으로 전쟁 중인 우리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통호(通好: 서로 관계를 가짐)를 요구하는 등 심상치 않은 태도를 보이는 건주여진(建州女眞)의 동정을 탐지해오라는 명을 받았다.

그 해 12월 만포진에서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의 여희윤(余希允)과 누루하치(奴兒哈赤: 뒤의 淸太祖)의 거성(居城)에 들어가 그들의 발호에 대한 명나라의 뜻을 전하고 동정과 산천·풍습 등을 살펴보았다.

이듬해 1월 귀국, 복명하면서 한만사연구(韓滿史硏究)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를 작성하여 올렸다.

귀국한 그 해에 함흥판관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중 금산전투 때 무단이탈한 죄와 누루하치에게 오배삼고두(五拜三叩頭: 다섯번 큰 절을 하고 머리를 세 번 땅에 조아림)의 예를 올려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복관되어 1599년 김해부사가 되고 1615년(광해군 7) 첨사가 되고, 이듬해 경상도수군절도사·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묵죽에 뛰어나 이정(李霆)과 함께 양대가로 이름을 날렸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淸初の疆域·續―申忠一の建州紀程圖記を中心として―」(三田村泰助,『朝鮮學報』36, 196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