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공오(公五). 신석만(申錫萬)의 아들이다.
1878년(고종 15)에 정시(庭試) 병과(丙科)에 합격, 출사(出仕)한 뒤 1881년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를 거쳐 같은 해 11월에는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승직되었다.
이듬해 9월에는 다시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어 임오군란의 책임을 물어 훈련도감(訓鍊都監)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려 이를 관철시켰다. 그 뒤 안동부사(安東府使)로 전출되어 재직하던 중 1885년 여름에 영남 방면에 큰 수해가 나자 위유사(慰諭使)에 임명되어 피해지역을 돌며 주민 구휼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1889년 5월 대사간에 복직된 뒤 1891년에는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 1894년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올랐다. 그 뒤 1902년부터는 장례원(掌禮院) 소경(少卿)과 궁내부(宮內府) 특진관(特進官)을 연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