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윤경(潤卿), 호는 인재(忍齋). 아버지는 현감 신필원(申必源)이며, 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로 송유전(宋有佺)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02년 별시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가 『당후일기 堂後日記』를 편수하여 호평을 들었다. 1710년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이듬 해 부안군수로 나갔다. 1717년 호서(湖西)의 막좌(幕佐)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1719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으며, 이듬 해 강릉부사로 나갔다.
이 때 재래의 여러 가지 폐단을 상소하여 시정하였고, 1725년(영조 1) 강계부사가 되어서는 이언적(李彦迪)을 향사하는 회재선생사(晦齋先生祠)를 중건하여 현인을 숭배하는 의리를 가르쳤고, 국방을 엄히 하여 외국첩자의 출입을 막았으며, 학교를 세워 교육을 장려하였고, 산업을 권장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충족하게 하였다.
주민들이 생사(生祠)를 세워서 신택의 공덕을 기리고 동비(銅碑)를 세워 치적을 칭송하였다. 1728년에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저서로는 『인재집(忍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