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청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지평, 정언,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죽헌(竹軒)
  • 청지(淸之)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동언 옥사
  • 본관고령(高靈)
  • 사망 연도1710년(숙종 3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평|정언|파주목사
  • 출생 연도1647년(인조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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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정언,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청지(淸之), 호는 죽헌(竹軒). 신용(申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득치(申得治)이고, 아버지는 신집(申潗)이며, 어머니는 권서(權緖)의 딸이다. 부인은 정언영(丁彦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4년(숙종 10)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유현(儒賢)을 욕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대하(權大夏)의 무리와 인조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면서 상대적으로 광해군을 포양(褒揚)하였다는 이유로 발방(拔榜: 과거급제등록에서 빼어버림)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유생 가운데 벌을 받은 자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혹 입격자가 있으면 발방하자는 논죄사정식(論罪事定式: 죄를 논하여 일의 가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사헌부가 다시 계문을 올려 결국 사판(仕版: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삭거(削去)당하였다. 지평(持平)을 거쳐 정언(正言) 때 사유(師儒: 스승이 될만한 학자)를 택하여 예양(禮讓)을 가르치자고 상소하였다.

파주목사로서 이동언옥사(李東彦獄事)에 관련되어 의금부·형조당상·삼사 관리들의 추문을 받기도 하였다. 1710년 순흥부 임소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죽헌집』이 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성호문집(星湖文集)』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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