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지평, 정언,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청지(淸之)
죽헌(竹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7년(인조 25)
사망 연도
1710년(숙종 36)
본관
고령(高靈)
주요 관직
지평|정언|파주목사
관련 사건
이동언 옥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정언,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청지(淸之), 호는 죽헌(竹軒). 신용(申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득치(申得治)이고, 아버지는 신집(申潗)이며, 어머니는 권서(權緖)의 딸이다. 부인은 정언영(丁彦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4년(숙종 10)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유현(儒賢)을 욕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대하(權大夏)의 무리와 인조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면서 상대적으로 광해군을 포양(褒揚)하였다는 이유로 발방(拔榜: 과거급제등록에서 빼어버림)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유생 가운데 벌을 받은 자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혹 입격자가 있으면 발방하자는 논죄사정식(論罪事定式: 죄를 논하여 일의 가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사헌부가 다시 계문을 올려 결국 사판(仕版: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삭거(削去)당하였다. 지평(持平)을 거쳐 정언(正言) 때 사유(師儒: 스승이 될만한 학자)를 택하여 예양(禮讓)을 가르치자고 상소하였다.

파주목사로서 이동언옥사(李東彦獄事)에 관련되어 의금부·형조당상·삼사 관리들의 추문을 받기도 하였다. 1710년 순흥부 임소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죽헌집』이 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성호문집(星湖文集)』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