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 출생.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온 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에서 일찍부터 병원을 개업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지청천(池靑天)의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 참여, 우익계청년운동의 선봉에 나섰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 때 무주에서 출마, 당선됨으로써 의회진출의 길을 뚫었으나 곧 정부수립 뒤 최초의 전라북도지사 발령에 따라 의원직을 사임하였다. 넉 달 동안의 제헌의원이었다. 그가 원내에 다시 복귀한 것은 4·19의거 뒤인 1960년의 제5대 국회 때였다.
오랫동안 의사로서 기반을 닦아온 무주에서 민주당공천을 받고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이 고향이고,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면서도 이력서의 본적란에는 항상 전라북도 무주를 기입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온 뒤 당시 아무도 엄두를 내지 않던 벽촌인 무주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백백교(白白敎)와 같은 무서운 미신이 발상한 그곳의 개화와 봉사에 보람을 찾고 상았기 때문이었다.
제5대 국회의원이 된 직후, 장면(張勉)내각의 조각(組閣) 때 보건사회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입각한 지 얼마 안 되어 신구파간의 흥정에 밀려 보사부장관자리를 내놓아야 하였는데, 그대신 무임소장관 자리가 제공되었고, 그 뒤 다시 내무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