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 출신. 1920년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송금할 것을 계획하고 신흥구(申興求)·이종만(李鍾萬) 등과 협의한 뒤 비밀 항일운동결사인 평양결사단 청주지부의 명의로 된 군자금요청서를 각지의 부호에게 발송하였다.
그 해 12월 17일 청주의 부호인 김상희(金相熙)의 집에 유영창(柳永昌)·한병호(韓秉浩)의 두 단원을 파견하여 군자금을 낼 것을 요구하였으나 김상희가 부재중이어서 실패하였다.
그 뒤 모의권총 한 자루를 구입한 뒤 김재진(金在振)·정인하(鄭仁河) 등의 부호들에게 임시정부에 송금할 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두 사람이 거부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 뒤 일본경찰에 잡혀 1921년 4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