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만 ()

근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홍릉제조, 영희전제조, 기로소비서장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6년(헌종 12)
사망 연도
1916년
본관
청송(靑松)
정의
조선 후기에, 홍릉제조, 영희전제조, 기로소비서장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심성택(沈星澤)의 아들로 심희순(沈熙淳)에게 입양되었다. 홍한주(洪翰周)의 외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2년(고종 9) 경과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에 김홍집(金弘集)·김영철(金永哲)·이희원(李喜元) 등과 함께 한권(翰圈)에 나아갔다. 1875년 부사과가 되어 그 해 4월 시행된 문과의 3소시관(三所試官)을 지냈다.

1876년 김홍집·이교하(李敎夏)·오익영(吳益泳) 등과 함께 본관록(本館錄)과 도당록(都堂錄)을 거쳐 1879년 승정원의 동부승지로 특별 제수되었다. 1884년 11월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90년에는 성균관대사성에 올랐다.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관서 지방에 속한 성천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치열하게 전개된 농민운동으로 인해 수령직에서 물러났다가 뒤에 복직되었다.

1897년 2월 비서승 겸 장례(秘書丞兼掌禮)가 되고, 그 해 3월 시종원시종(侍從院侍從)이 되었다. 이어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됨과 동시에 칙임관4등에 올랐다. 같은 해 8월 태복사장(太僕司長)을 거쳐 경모궁제조(景慕宮提調)가 되었다. 이듬해에 다시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희전제조(永禧殿提調)에 임명되었다.

1901년에는 종묘서제조가 되고, 1903년에는 경효전제조,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었다. 1904년에는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과 홍릉제조(洪陵提調)를 지냈다. 1907년 재차 영희전제조가 되고 칙임관4등에 올랐다. 같은 해 1월에는 기로소비서장이 되고, 그 해 5월 홍릉제조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고종시대사』 1∼6(국사편찬위원회,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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