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위보(渭甫). 심정택(沈正澤)의 아들로 심기택(沈起澤)에게 입양되었다.
1891년(고종 28) 경과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나아갔다.
1892년 6월 홍문관부수찬을 시작으로 갑오동학농민운동이 한창이던 1894년에는 사헌부장령이 되어 그 해 3월 고부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봉기의 원인은 1차적으로 지방수령의 가렴주구와 탐학에 있음을 밝히는 상소를 삼사 합계(合啓)로 여러 차례 올렸다.
1898년 11월 비서승 겸 장례(秘書丞兼掌禮)를 지냈으며, 같은 해 12월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고 이어 칙임관4등에 올랐다. 1899년 장례원소경이 됨과 동시에 당상관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에 근무 소홀로 인하여 징계를 당하였으나 8월에 사면되어 다시 복직되었다.
이어 궁내부특진관과 칙임관4등에 복직되었다. 1900년 장례원소경으로 재임명되었다. 그 해 8월 경효전제조가 되었고, 이듬해 경효전제조에 있으면서 특명전권공사를 겸임하였다.
1903년에는 비서원경, 내장원감독이 되었다. 1906년 궁내부특진관에 칙임관3등에 올랐으며, 1907년 규장각제학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