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재문집 ()

심석재문집
심석재문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송병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0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송병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00년 송병순의 아들 송증헌(宋曾憲)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35권 15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내용

권1∼3에 시 494수, 권4에 소(疏) 1편, 권5∼11에 서(書) 343편, 권12∼14에 잡저 57편, 권15·16에 서(序) 60편, 권17∼20에 기(記) 161편, 권21에 발(跋) 23편, 권22에 명(銘) 16편, 잠(箴) 2편, 혼서 1편, 축문 4편, 제문 15편, 애사 1편, 권23에 비(碑) 17편, 권24·25에 묘갈명 34편, 권26에 묘지명 14편, 권27∼31에 묘표 141편, 권32·33에 행장 19편, 전(傳) 2편, 권34·35에 부록으로 저자의 연보 등이 실려 있다.

시는 금오산·덕유산·화양동 등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것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은 것이 많다. 중국의 이백(李白)과 주희(朱熹)·이호은(李浩殷)·안택환(安澤煥) 등의 시에 차운(次韻)하였고, 오철영(吳哲永)·김영준(金永駿)·송경명(宋景明) 등의 시에 화운(和韻)하였다.

소는 1865년(고종 2) 3월에 대원군이 저자의 조상 송시열(宋時烈)을 모신 청주의 만동묘(萬東廟)를 철폐하자, 이것을 다시 세워줄 것을 주장한 내용이다. 서(書)에는 정해조(鄭海朝)·전자명(田子明)·우하철(禹夏轍) 등과 성리학·예(禮) 등에 대하여 논한 내용이 많다.

잡저에는 금오산·방장산(方丈山) 등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자(字)·호(號) 등에 붙인 설명, 학문을 하면서 느낀 점이나 중요한 부분을 기록하고 또한 선유(先儒)와 견해가 다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 화이론(華夷論)의 입장에서 자신의 견문을 기록한 것, 회강(會講)·향사(享祀)·향약(鄕約) 등의 규약이나 절목을 기록한 것, 『중용』·『소학』·『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을 문인에게 강의하고 질문에 대답한 내용을 기록하여 놓은 것 등이 있다.

「양남향약절목(陽南鄕約節目)」은 충청도 옥천의 양남면에 1894년부터 실시한 향약의 연혁 및 22개 조목의 절목을 기록한 것이고, 「만동묘향사절목(萬東廟享祀節目)」은 이미 철폐된 만동묘의 제향을 계속해서 실시하기 위하여 마련한 절목이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때 주도적 구실을 한 이완용(李完用) 등 다섯 대신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여 지은 「토오적문(討五賊文)」이 있다.

서(序)는 친지를 송별하여 지은 것, 족보·문집이나 계(契) 등에 붙인 것이 많다. 발은 『주서선류(朱書選類)』·『용학보의(庸學補疑)』·『사례축식(四禮祝式)』 등 저자 자신이 편집한 책에 붙인 것이 많다.

의의와 평가

당시의 보수적인 재야 지식인의 사회 경제적 변화 및 일본 제국주의 침입에 대한 대응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관련 미디어 (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