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송병순의 아들 송증헌(宋曾憲)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35권 15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3에 시 494수, 권4에 소(疏) 1편, 권5∼11에 서(書) 343편, 권12∼14에 잡저 57편, 권15·16에 서(序) 60편, 권17∼20에 기(記) 161편, 권21에 발(跋) 23편, 권22에 명(銘) 16편, 잠(箴) 2편, 혼서 1편, 축문 4편, 제문 15편, 애사 1편, 권23에 비(碑) 17편, 권24·25에 묘갈명 34편, 권26에 묘지명 14편, 권27∼31에 묘표 141편, 권32·33에 행장 19편, 전(傳) 2편, 권34·35에 부록으로 저자의 연보 등이 실려 있다.
시는 금오산·덕유산·화양동 등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것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은 것이 많다. 중국의 이백(李白)과 주희(朱熹)·이호은(李浩殷)·안택환(安澤煥) 등의 시에 차운(次韻)하였고, 오철영(吳哲永)·김영준(金永駿)·송경명(宋景明) 등의 시에 화운(和韻)하였다.
소는 1865년(고종 2) 3월에 대원군이 저자의 조상 송시열(宋時烈)을 모신 청주의 만동묘(萬東廟)를 철폐하자, 이것을 다시 세워줄 것을 주장한 내용이다. 서(書)에는 정해조(鄭海朝)·전자명(田子明)·우하철(禹夏轍) 등과 성리학·예(禮) 등에 대하여 논한 내용이 많다.
잡저에는 금오산·방장산(方丈山) 등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자(字)·호(號) 등에 붙인 설명, 학문을 하면서 느낀 점이나 중요한 부분을 기록하고 또한 선유(先儒)와 견해가 다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 화이론(華夷論)의 입장에서 자신의 견문을 기록한 것, 회강(會講)·향사(享祀)·향약(鄕約) 등의 규약이나 절목을 기록한 것, 『중용』·『소학』·『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을 문인에게 강의하고 질문에 대답한 내용을 기록하여 놓은 것 등이 있다.
「양남향약절목(陽南鄕約節目)」은 충청도 옥천의 양남면에 1894년부터 실시한 향약의 연혁 및 22개 조목의 절목을 기록한 것이고, 「만동묘향사절목(萬東廟享祀節目)」은 이미 철폐된 만동묘의 제향을 계속해서 실시하기 위하여 마련한 절목이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때 주도적 구실을 한 이완용(李完用) 등 다섯 대신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여 지은 「토오적문(討五賊文)」이 있다.
서(序)는 친지를 송별하여 지은 것, 족보·문집이나 계(契) 등에 붙인 것이 많다. 발은 『주서선류(朱書選類)』·『용학보의(庸學補疑)』·『사례축식(四禮祝式)』 등 저자 자신이 편집한 책에 붙인 것이 많다.
당시의 보수적인 재야 지식인의 사회 경제적 변화 및 일본 제국주의 침입에 대한 대응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