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숙(重叔), 호는 시약헌(蒔藥軒). 심수(沈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참판 심우신(沈友信)이고, 아버지는 심후(沈詡)이며, 어머니는 지평 정윤우(丁胤祐)의 딸이다. 부인은 영춘현감 박해(朴垓)의 딸이다.
1641년(인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2년 사관(史官)을 거친 자로 춘추사(春秋使)에 천거되었으며, 검열로서 대제학 이식(李植)과 함께 적상산성(赤裳山城)의 실록을 살펴보고 왔으며, 봉교로서 강화를 다녀왔다.
열성실록(列聖實錄) 및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1,025권 가운데 전무자(全無者)가 148권, 낙장자(落張者) 167권이고, 『광해군일기』는 전무자 65권, 낙장자 2권이며, 광해군 13년(1621) 8월 이후는 전무하므로 그 사이의 권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정언(正言)·장령(掌令)을 거쳐 1652년(효종 3) 암행어사에 제수되었다. 집의(執義) 때에 대청(臺廳)에 있으면서 대비를 인피(引避: 물러나 피함)하지 않아, 대비(大妃)를 속이고 오만하게 대한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보덕·사간·부교리를 거쳤다.
1654년 문안사(問安使)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를 다녀와서 삼사를 두루 거쳤다. 1661년(현종 2)에는 실록찬수의 공로로 가자(加資)되고, 승지·병조참지·병조참의·판결사·형조참의·예조참의·승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