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속명은 변헌(卞獻). 자는 시재(時哉). 호는 삼일산인(三一山人)·팔계후인(八溪後人)·우용(寓慵). 직제학 효문(孝文)의 6대손이다.
일찍이 승려가 되어 청허 휴정(淸虛休靜)·사명 유정(四溟惟政) 등에게 불법을 배우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종군하여 크게 공을 세웠으며, 비변사(備邊司)에서 사정(司正)을 제수한 다음 이어서 사과(司果)를 제수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과방(科榜)이 삭제되었다.
시서(詩書)에 뛰어나 명나라에 들어가서는 명인이라 칭찬을 받았다. 명나라의 『황화집(皇華集)』 또는 『동국필원(東國筆苑)』 등에 시문이 들어 있으며, 영변의 보현사완허당대사석종비(普賢寺玩虛堂大師石鐘碑) 비문을 짓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