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神功) 섭정 62년조의 신라를 치게 하였다는 본문내용에 인용된 『백제기(百濟記)』 기사에 따르면 귀국(貴國), 즉 왜국을 받들지 않자 왜국이 사지비궤(沙至比跪)를 보내 그로 하여금 치게 하였는데 신라인이 미녀 2인을 꾸며서 그를 유혹하니 사지비궤가 그 미녀를 받고 도리어 가라국을 쳤다.
이에 아수지는 가라국왕 기본한기(己本旱岐) 및 아백구지(阿百久至)·국사리(國沙利)·이라마주(伊羅麻酒)·이문지(爾汶至) 등과 함께 그 사람들을 거느리고 백제로 달아나니 백제가 후히 대접해 주었다고 한다.
이 기사 자체는 왜국의 가야, 즉 한반도 남부지역 지배설의 근거로 될 소지도 안고 있는 다분히 윤색된 내용이다. 그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본다면 여기에 나오는 아수지는 다른 사료에 전혀 등장하지 않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가라국의 왕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