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도감창사(溟州道監倉使)였다. 신라 의상법사(義湘法師)가 창건한 낙산사(洛山寺)에는 관음(觀音)과 정취(正趣) 두 성인을 모신 불전이 있었는데 이 불전은 화재에도 타지 않았다.
몽고의 병란이 있은 이후의 계축(1253)·갑인(1254) 연간에 두 성인의 진용(眞容)과 두 보주(寶珠)를 양주성(襄州城)으로 옮겼는데 몽고병이 급히 쳐들어와 성이 함락될 지경이었다.
이 때 주지인 아행선사(阿行禪師)가 은합에 두 보주를 넣어가지고 도망하려 하자, 절의 종인 걸승(乞升)이 이것을 빼앗아 땅에 깊이 묻으면서 자기가 병란에서 죽음을 면한다면 두 보주를 나라에 바칠 것이라고 맹세하였다.
1254년(고종 41) 10월 성이 함락되었는데, 아행은 죽었으나 걸승은 죽음을 면하여 적병이 물러간 뒤에 두 보주를 땅 속에서 파내어 당시 명주도감창사인 낭중(郎中) 이녹수에게 바쳤다. 이녹수는 이것을 받아서 감창고(監倉庫) 안에 간직하고 매번 교대할 때마다 서로 전하여 이어받았다 한다. 1258년(고종 45) 6월 원나라에서 여수달(余愁達 : 에쉬데르)을 보내와 태자를 보내 항복할 것을 요구하였을 때, 7월 원외랑으로서 “태자가 병이 들었으니, 병이 나아지면 와서 만날 것이다.”라는 조정의 의견을 전달하였지만, 여수달(余愁達 : 에쉬데르)은 “너희 나라의 거짓을 알았으니 군대를 풀어 침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