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고종 4) 간행되었던 것을 뒤에 김휘운의 현손 김우림(金佑林)이 증보하고 김휘운의 두 아들의 문집을 합쳐 간행한 것이다. 권두에 김우림의 유고후지(遺藁後識)가 있다.
3권. 석인본.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의 현곡서원(玄谷書院)에 있다.
상권은 김휘운의 『아호일고(鵝湖逸藁)』로 시 92수, 소장(疏狀) 4편, 서(書) 2편, 서발(序跋) 2편, 부록으로 만장(輓章) · 제문 · 묘지 · 유사가 실려 있다. 중권은 김영기의 『승암유고(勝庵遺稿)』로 시 25수, 서(書) 9편, 상량문 1편 제문 · 애사 7편, 행장 2편, 유사 3편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권은 김양기의 『자성유고(自醒遺稿)』로 부(賦) · 사(辭) 3편, 시 31수, 제문 3편, 잡저 1편,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아호일고』의 「인천도중우우(仁川途中遇雨)」 · 「객성저만영(客城邸謾詠)」 등의 시에는 쓸쓸한 여수(旅愁)가 잘 표현되어 있다. 「화류곡(花柳曲)」 · 「해석화(解惜花)」 등은 악부체(樂府體)로 남녀 간의 염정(艶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휘운의 시에는 비[雨] · 눈[雪] · 꽃[花] · 강(江) 등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으며, 대개 인생에 대한 깊은 우수를 함축하고 있다. 또 정약용(丁若鏞)이 전라도 해남(海南)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보낸 시가 2수 있어 그들의 친분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소장은 조식(曺植) · 김덕탄(金德灘)을 종사(從祀)하고, 김성일(金誠一)의 서원을 창건하자는 내용이다.
『승암유고』의 시는 경물(景物)에 관한 것이 뛰어나다. 『자성유고』의 사 중 「투금사(投金辭)」는 고려 때 우애 좋은 어떤 형제가 금덩어리를 우연히 얻게 되자 서로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강을 건너다 던져 버렸다는 이야기로 『삼국유사』의 내용보다 다양하고 문학적이다.
『자성유고』 잡저의 「알봉유조록(閼逢柔兆錄)」은 1814년부터 1816년까지의 가뭄으로 인한 사회 · 정치적 상황을 일기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분량이 많고 내용이 자세하여 조선의 구황(救荒)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