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궁중 의례에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 운영되었던 임시 기구의 대표 명칭,.
설치 목적
기능과 역할
변천사항
이후 본격적으로 아악 정비가 시작되면서 악기도감에서는 1426년(세종 8)부터 3년 동안 528매의 편종과 편경을 다량 제작하였다. 이밖에도 세종 때에는 악기도감 외에 주종소(鑄鐘所), 악기감조색(握奇監造色) 등이 별도로 운영되었는데, 이들 기관과 악학도감의 관계 등은 분명히 알기 어렵다.
조선 후기, 숙종 때부터 악기도감보다 악기조성청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는 한편, 악기도감과 악기조성청을 합친 ‘악기조성도감’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숙종 이후 악기조성청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는 상황에서도 각종 문서에서는 여전히 악기도감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런 관행은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인조 때에 설치되었던 제기악기도감의 상세 내용은 『제기악기도감의궤(祭器樂器都監儀軌)』에 수록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역주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국립국악원, 2009)
- 『국역제기악기도감의궤』(민속원, 2020)
단행본
- 『규장각소장 의궤해제집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3)
논문
- 고승준, 「조선시대 악기의 개념과 수급방식 변천연구: 악서와 의궤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 송혜진, 「조선조 왕실악기 수요와 대응의 역사적 전개양상」 (『한국음악연구』 54, 한국국악학회, 2013)
- 오지혜, 「조선전기 궁정 악기의 제도 정비 및 정립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20)
- 오지혜, 「조선시대 궁정 악기 제작기구의 조직과 역할」 (『이화음악논집』 26,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2022)
인터넷 자료
- 조선왕조실록 DB(https://sillok.history.go.kr/main/main.do;jsessionid=9DB8E3D1E295FCC599196F2D4790D54A)
- 승정원일기 DB(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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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정조실록(正祖實錄)』 즉위년(1778)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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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세종 6년 11월 18일, 『세종실록』 권26 14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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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송혜진 「조선조 왕실악기 수요와 대응의 역사적 전개양상」『한국음악연구』5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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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종묘의 안에 있는 사당. 조선 시대에, 왕과 왕비로서 종묘에 모실 수 없는 분의 신위를 모시던 곳으로, 태조의 사대조(四代祖)와 그 비(妃), 대가 끊어진 임금 및 그 비를 모셨으며, 1년에 두 번 정월과 7월에 대관(代官)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태묘의 서북쪽에 있다. 우리나라 보물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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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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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중국 당나라 때의 악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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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향악을 연주하는 데에 쓰는 악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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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918년에 왕건이 분열된 한반도를 통일하고 개성에 도읍하여 고려라는 나라를 세운 때부터 1392년 이성계에 의하여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의 시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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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종을 주조하여 만드는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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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예법과 음악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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