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궁중 의례용 악기와 의물, 복식을 제작하기 위한 기구의 명칭은 악기감조색(樂器監造色), 악기도감(樂器都監), 장악도감, 제기악기도감(祭器樂器都監), 종경교정청(鐘磬校正廳), 주종소(鑄鐘所), 악기수개청, 악기소, 악기조성도감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조선 후기 숙종 이후로는 이중에서 악기도감과 악기조성청이 혼용되는 경향을 보이는 한편, 영조, 정조, 순조 때에 진행된 대규모 악기 조성 사업이 악기조성청 조직으로 추진되고 의궤로 편찬됨에 따라 악기조성청이 조선 후기 국가의 악기 제작 기구의 대표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숙종 때에는 1682년(숙종 8)에 종묘 및 영녕전 제례에 사용될 방향을 제작하기 위해 악기조성청을 설치하였고, 영조 때에는 1741년(영조 17)에는 대보단 악기조성청과 인정전 악기조성청이, 정조때에는 경모궁 악기조성청이 설치 및 운영된 바 있다. 이 중에서 인정전과 경모궁 제례, 사직 제례를 위한 악기 제작 과정은 각각 『인정전궁 악기조성청의궤』(1745), 『경모궁 악기조성청의궤』(1777), 『사직 악기조성청의궤』(1804)에 기록되어 전한다.
악기조성청은 임시로 설치 및 운영되었다. 그러나 여러 부처와의 업무 협의를 통해 재료, 인력, 재원을 확보하고, 악기 및 의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국가 예악을 조화롭게 구현하는 데 필요한 악기와 의물, 복식 등을 생산하는 기구로서 기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