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금속으로 만든 금요(金鐃)로 타악기의 하나.
유래와 역사
한편, 고려 예종 때에는 북송으로부터 대성아악(大晟雅樂)이 수용될 때 무무에 편성된 4종의 의물 순(錞) · 탁(鐲) · 요(鐃) · 탁(鐸)의 하나로 수용되었으며, 이러한 용도는 조선 전기까지 이어졌다. 『세종실록』 「오례」의 길례 악기 도설에 ‘자루는 있어도 혀가 없는 작은 령(鈴)’이라는 설명이 있고, 『악학궤범』 및 『사직서의궤』 등의 의궤류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시악화성(時樂和聲)』 및 『춘관통고(春官通考)』에서는 아악 일무에 편성되었던 순 · 탁 · 요 · 탁이 생략된 것으로 보아 늦어도 정조 시기 이후로는 요의 사용이 중지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및 조선 시대 문헌상에서는 요를 금요(金鐃) 또는 요령(鐃鈴)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형태와 제작 방식
요는 손잡이〔柄〕와 몸체로 이루어졌으며 손잡이는 길이 3촌 8푼, 구경은 1촌 4푼, 자루의 두께는 2푼이고, 몸체의 길이는 7촌 6푼, 구경은 6촌 6푼, 두께는 2푼이다.
용도
연주법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신역악학궤범』
- 『세종실록(世宗實錄)』
- 『시악화성(時樂和聲) 』
- 『악학궤범(樂學軌範)』
- 『춘관통고(春官通考)』
- 『隋書』
논문
- 송혜진, 「고려대성아악의 변천과 지속」(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1986)
- 중팡팡, 「고구려의 한(漢)나라 고취(鼓吹) 수용과 그 독자적 특징」 (『한국학』 146,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인터넷 자료
- 일본 미호박물관 소장 유물, 요(https://www.miho.jp/booth/html/artcon/00001009.htm)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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