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자성(子誠). 아버지는 병조참판 안준(安浚)이다.
1625년(인조 3)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이립(李立)과 함께 용천(龍川)의 소위포(少爲浦)에서 후금군(後金軍)의 배후를 위협하는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또 평안도 철산 앞바다의 가도(椵島)에 진을 치고 요동(遙東) 수복작전을 펴고 있던 명나라 장군 모문룡(毛文龍)을 도와 활약한 공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이 되었고, 명나라로부터는 의병장의 은자패(銀子牌)와 1,000석의 쌀을 하사받았다. 1641년 최효일(崔孝一)·차예량(車禮亮) 등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명나라를 도울 것을 모의하였다.
먼저 최효일과 차예량을 등주(登州)에 보내고, 뒤에 압록강을 건너려다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청나라에 벼슬하고 있던 역관 정명수(鄭命壽)에게 발각되어 서울로 잡혀와 처형되었다.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의주의 백마산성사(白馬山城祠)와 현충사(顯忠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