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진(景鎭), 호는 퇴우(退憂) 또는 송촌(松村). 아버지는 안후지(安厚之)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성문준(成文濬)의 딸이다. 김집(金集)과 송준길(宋浚吉)에게서 수학하였다.
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주부(主簿), 감찰(監察), 예조·형조의 좌랑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60년을 전후하여 노론(老論)과 남인(南人) 간의 예론(禮論)에서는 노론의 주장을 적극 찬동하였다.
1679년(숙종 5)에는 숙종의 부름을 받아 입궐하여 종척(宗戚)과 분당(分黨)의 폐해, 공거(貢擧)의 잘못 등을 일일이 주청하였고, 같은 해 10월에 또한 입궐하여 분당의 폐해에 대해 주청하였다. 1680년에 송시열이 석방되자 윤휴(尹鑴)·윤선도(尹善道) 등을 탄핵 상소하였으나 분당의 폐해가 점점 심해지자 일체 정치적 활동을 끊고 퇴우당(退憂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그리고 자손에게는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고 학문을 하여 자신을 닦되 권력에는 가까이 하지 말도록 경계하였다. 저서로 『송촌집(松村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