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탐진(眈津). 자는 의숙(宜叔), 호는 물재(勿齋). 태인 출신. 병조판서 안사종(安士宗)의 후손이며,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손홍록(孫弘祿)과 함께 의곡계운장(義穀繼運將)이 되어 곡식과 포목을 행재소(行在所 : 정궁 외에 왕이 임시로 정부를 볼 수 있는 장소)로 수송하였다.
그 해 7월 왜장 고바야카와[小早川降景]가 전주를 공격하자 전주경기전참봉(全州慶基殿參奉) 오희길(吳希吉)·손홍록과 함께 경기전을 지켰다. 그리고 태조의 수용(睟容: 초상화)과 제기(祭器), 사고(史庫)의 역대실록과 전적을 정읍의 내장산(內藏山) 용굴암(龍窟庵)에 옮겨 보존하였다. 1593년 행재소에 나아가 중흥의 6책(策)을 아뢰고 별제(別提)를 제수받았다. 태인의 남천사(藍川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