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함안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통감부와 일본정부에 논책문(論責文)을 보냈다가 몇 차례 구금되었고, 1910년 조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병합되자 만국공관(萬國公館)에 호소문을 보내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조국의 독립을 진정하는 글을 보냈다가,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3개월형에, 2년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19년 3월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당시 한문교사로 있으면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열(韓灌烈) 등 함안군내 청년유지들의 배후 고유구실을 하면서,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후원하였다.
그 뒤 이곳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잡혀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동아일보(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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