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호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함안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칭
운익(雲翼)
우봉(藕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7년(철종 8)
사망 연도
1921년
출생지
경상남도 고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함안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개설

자는 운익(雲翼), 호는 우봉(藕峯). 경상남도 고성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통감부와 일본정부에 논책문(論責文)을 보냈다가 몇 차례 구금되었고, 1910년 조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병합되자 만국공관(萬國公館)에 호소문을 보내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조국의 독립을 진정하는 글을 보냈다가,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3개월형에, 2년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19년 3월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당시 한문교사로 있으면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열(韓灌烈) 등 함안군내 청년유지들의 배후 고유구실을 하면서,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후원하였다.

그 뒤 이곳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잡혀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동아일보(東亞日報)』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