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명칭은 알바니아공화국(Republic of Albania)으로, 유고슬라비아·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362㎞이다.
면적 2만 8748㎢, 인구 302만 9278명(2015년 현재), 수도는 티라나(Tirane)이다.
종족구성은 알바니아인 95%, 그리스계 3% 등이다. 언어는 알바니아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이슬람교 70%, 동방정교 20%, 가톨릭교 10% 등이다.
지중해성 기후이므로 온화하고 다습한 편이나 일부 내륙지방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낮다. 농업 및 광업이 주요 생산 부문이고, 서구식의 공업화는 아직 초기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석유·갈탄·철광·크롬·니켈·구리 등의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최근에 수력발전과 함께 광산개발이 급진전되고 있다.
옛 미·소 냉전시 동유럽 공산국가 중 가장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영위하였고, 1976년에는 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차관이나 합작회사 설정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후 1991년 공산화에서 탈피하여 생산수단의 완전 국유화와 철저한 통제경제, 그리고 1947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식 경제개발계획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고 있으나, 아직 저개발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152억 달러, 1인당 국내총생산은 5,290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제가 가미된 의원내각제의 공화제이다. 대통령은 임기 5년으로서 의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며, 의회는 임기 4년의 인민의회(140석)이 대행한다. 주요 정당은 민주당, 사회당, 인권연합, 사민당, 농민당, 공화당, 기민당, 녹색당 등이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알바니아인들은 발칸반도 서부에 거주하였으나, 독립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14세기 후반까지 주변 강대국인 로마·비잔틴·슬라브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그 뒤 19세기 말까지 터키의 통치하에 있었다. 1912년 발칸전쟁에서 터키가 패하자 알바니아는 독립을 선언하고,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으로 다시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자 이에 항거하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호자(Hoxha)의 영도 아래 1944년 11월 29일 독일로부터 독립하였고, 1946년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에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지금의 러시아)과 결별하여 독자노선을 걷자, 알바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팽창을 두려워하여 소련의 대유고 공세에 가담하였다.
1951년 스탈린식 계획경제체제를 도입하는 등 친소노선으로 전환하였고, 1955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스탈린(Stalin,I.)이 죽은 뒤에 흐루시초프(Khrushchyov, N.)의 반스탈린 노선 강요와 경제 간섭, 유고슬라비아와의 화해 등으로 1961년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소련과 대립 중이던 중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이어서 1968년에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여 일방적으로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함으로써 동구권에서는 유일하게 친중국 세력이 되었다. 한편, 호자는 알바니아노동당을 창건한 이래 이와 같은 대외정책 노선이 변경될 때마다 국내의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폐쇄적인 일인독재 장기집권체제를 약 40년 동안 유지하다가 1985년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권력구조가 개편되었으나, 스탈린식 강압정치와 경제침체 등의 유산이 쉽게 청산되지 않았다.
1970년대 중국이 미국에 접근하자 이를 기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여 중국과의 관계조차 냉각되는 등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하면서,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참가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 유혈 민중 봉기에 의해 차우세스쿠 정권이 몰락하자 알바니아는 알리아(Alia, R.) 노동당(19991년 6월 ‘사회당’으로 당명 변경) 제1서기의 주도하에 ‘위로부터의 부분적·점진적 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0년 3월 카바야에서 최초로 반(反)공산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였다. 1991년 4월 26일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 신헌법을 제정하고, 국호도 ‘알바니아인민사회주의공화국’에서 ‘알바니아공화국’으로 변경하였으며, 신(新)국회 간접선거에 의해 알리아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92년 3월 급진 개혁 세력인 민주당이 두 번째 자유 총선에서 승리한 이루 개혁·개방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1992년 4월 카리스마적인 민주당 당수 살리 베리샤(Sali Berisha)가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내 질서 회복과 경제 난국 타파를 추진하였다.
일리르 메타(Ilir Meta) 현 대통령은 2017년 4월 의회의 투표에 의해 제7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우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또한 알바니아 특유의 종교적(이슬람교) 영향으로 알제리·이집트·리비아 등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진출은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8월 22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7년 현재 주 그리스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국은 1995년 5월 과학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2004년 5월 EDCF지원 협정, 2006년 5월 이중과세방지 협정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알바니아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440만 달러로 주종목은 합성수지, 타이어, 무선통신기기 등이고, 수입액은 250만 달러로 주종목은 담배잎, 선박용 부품, 의류 등이다.
2015년 현재 삼성전자 관계 업체가 진출해 있고, 71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48년 11월 29일 국교를 수립하고, 1954년 7월 30일 대사관을 교환 설치하였으나, 1992년 10월 18일 폐쇄되었다.
양측은 1955년 9월 문화협조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56년 7월 과학기술 및 기술원조 협정, 1961년 8월 방송분야협조 협정, 1961년 11월 통상 및 항해조약, 1965년 12월 영사조약, 1984년 11월 과학·기술협력 협정, 1985년 11월 86∼90년상호상품납입 및 지불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89년 7월에는 89∼90년문화교류계획서를 교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