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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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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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정문란(三政紊亂)의 한 사례인 환곡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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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삼정문란(三政紊亂)의 한 사례인 환곡의 폐해.
내용

곡물의 가격이 바야흐로 오르려고 할 때, 서리가 백성들에게 마땅히 나누어주어야 할 곡식을 상관과 함께 모의하여 쌓아두었다가 곡물의 가격이 오른 뒤에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여 이득을 나누어 먹고, 곡물의 가격이 떨어질 때에는 백성들도 반급(頒給)받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서리와 농민이 공모하여 곡식을 창고에 쌓아둔 뒤 반급문서만을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수령이 창고를 조사하고서 여전히 곡식이 남아 있음을 의심하면 서리는 “혹 부족할까 두려워 색락미(色落米 : 환곡을 회수할 때 검사용 쌀이나 헤어진 쌀만큼 더 거두어들이던 일)까지 모두 저장하였습니다.”라고 하며, 백성들에 대하여는 암류를 구실로 겨울이 되면 석(石)당 1두(斗) 5승(升)의 모조(耗條), 1두 5승의 색락, 2승 정도의 타섬(打苫), 5두 정도의 창중축(倉中縮)의 비용을 거두는데, 모두 합하여 7∼8두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의 순조·헌종·철종대에 더욱 심하였다.

참고문헌

『목민심서(牧民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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