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승려, 시성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7년에 간행한 시문집.
개설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야운대선사문집(野雲大禪師文集)』 권1에는 시 30여 편, 권2에는 편지 1편·잡저 3편·서문(序文) 1편·기(記) 6편, 권3에는 제문과 행장이 실려 있다. 또 권두에는 5편의 서문이 실려 있는데, 이오수(李五秀)가 쓴 「운상인시집서(雲上人詩集序)」, 이병양(李秉陽)이 쓴 「야운시고서(野雲詩稿序)」, 영담 취현(影潭就贒)이 쓴 「야운선사문집서(野雲先師文集序)」, 조정화(趙庭和)가 쓴 「야운당시집서(野雲堂詩集序)」가 그것이다.
서문을 쓴 여러 사람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문보다 시가 뛰어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오수는 「운상인시집서」에서 인간은 곤궁한 뒤에야 시가 훌륭하게 된다는 송(宋)의 문장가 구양수(歐陽脩)의 말을 인용하여 대사의 시도 그러하다고 평가하였다.
문 가운데는 경상도 특히 안동, 문경지역의 사찰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많다. 예를 들어 「대승사대웅전단청권선문(大乘寺大雄殿丹靑勸善文)」·「쌍계사적묵당중수모연사(雙溪寺寂黙堂重修募緣辭)」·「금룡사양진암중수기(金龍寺養眞庵重修記)」 등이 있다. 또 「광흥사응진전추원록서(光興寺應眞殿追遠錄序)」·「광흥사번와기(光興寺燔瓦記)」·「광흥사대웅전불상개금탱화성기(光興寺大雄殿佛像改金幢畵成記)」 등 안동의 광흥사(光興寺)에 대한 기록이 많다.
1760년(영조 36)에 지은 「광흥사대웅전불상개금탱화성기」는 조선 후기 불화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당시 불상금화(佛像金畵)·영산회후불탱(靈山會後佛幀)·삼장탱(三藏幀)·시왕탱(十王幀)·감로탱(甘露幀) 등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권말에는 조정화(趙庭和)가 지은 「야운당대선사화상찬(野雲堂大禪師畵像讚)」과 영식(永植)이 쓴 「야운당대선사행장(野雲堂大禪師行狀)」이 실려 있다.
행장 다음에 1827년 강운(姜橒)이 쓴 「서야운사유고후(書野雲師遺稿後)」와 1826년 소호거사 이병원(李秉遠, 1774~1840)이 쓴 「제야운유고후(題野雲遺稿後)」의 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불교전서』제9책(동국대학교 한국불교전서편찬위원회,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 『조선조 불가문학연구: 임란기를 중심으로』(배규범, 보고사, 2001)
- 「조선조 불가문학의 역사성」(이진오, 『한국문학논총』14,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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