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설치연대는 알 수 없으나, 983년(성종 2)의 향리직 개편에서는 보이지 않고 1018년(현종 9)의 향리정원규정에는 나타나 있으므로 그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초기 이전의 질병치료는 주로 무가(巫家)나 불교의학에 의존하였지만, 987년 12목(牧)에 각각 의학박사 1인을 파견하여 의학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그 성과에 힘입어 그 뒤 각 지방에 의료관계 향리직이 설치되었는데, 약점사는 위로 약점정(藥店正)·부약점정과 함께 의료상담이나 질병치료, 약재의 구입·보관·판매 등을 담당하였다.
그 정원은 주·부·군·현·진(鎭)의 인정(人丁)의 크기에 따라 1∼4인이었는데, 여기에 임명되는 계층은 향리조직의 중심부서인 사호(司戶)·사병(司兵)·사창(司倉)의 향리직에 임명되는 계층에 비하면 그 가문의 격이 떨어지지만, 이들 역시 유력한 토착세력이었으며, 약점사의 임명에는 그 지방의 사심관(事審官)이 관여하였다.
그 뒤 향리제도는 변화하였지만 약점사의 구체적인 변화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