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법기리 ‘대매지리산’에서 마을 쪽으로 면한 곳에 속칭 ‘창기사발’이라고 옛사람들에게 구전되어온 가마자리이다.
마을의 산기슭 경사면에 있는 법기리 787번지로부터 산 위까지 여러 기의 가마자리가 산재하여 있다. 마을 바로 위 산기슭에 있는 가마는 대체로 17세기의 것이며 산 위에 있는 가마는 16세기경의 것으로 보아 처음 산 위에서 자기 제작이 시작되어 점점 아래로 내려온 것 같다.
산 위의 파편은 백자들로, 기형(器形)은 사발, 대접, 접시 등이 대부분이며 그릇의 내저(內底)에 원각(圓刻)이 깎여 있다. 굽은 죽절(竹節)굽이 많고 모래에 내화토(耐火土)를 빚어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녹청자(綠靑磁) 같은 것이 드물게 섞여 있어 주목된다.
산기슭의 가마터에서 수집되는 파편은 모두 백자로, 산 위 백자보다 그릇이 투박하고 굽이 두꺼우며 굽바닥이 오목한 안굽과 죽절굽이 퇴화된 예도 있었다. 기형은 대부분 사발, 대접, 완, 접시 등으로, 그릇 내저에 원각이 깎여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으며, 굽 바닥에는 내화토를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산 위와 그 밑의 산기슭 가마의 백자의 질은 모두 하품으로, 회백색 또는 갈색을 머금고 있어서 태토(胎土)와 유약(釉藥)에 철분 등의 잡물이 섞여 있으며 환원(還元)이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