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는 경상남도 동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과 남쪽은 부산광역시, 서쪽은 경상남도 밀양시·김해시,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52′∼129°07′, 북위 35°16′∼35°31′이다. 선사시대 패총 유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통도사는 646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불보사찰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85.62㎢이고, 인구는 35만 9531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 4개 면, 8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산시청은 남부동에 있다.
양산시는 동쪽과 남쪽은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밀양시, 서쪽은 경상남도 김해시,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52′~129°07′, 북위 35°16′~35°31′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85.62㎢이고, 인구는 35만 9531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8개 행정동[중앙동, 양주동, 삼성동, 강서동,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과 23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 행정 단위로 166개 행정리, 37개 법정리가 있다. 양산시청은 남부동에 있다.
태백산맥의 남단에 자리해 시의 서쪽과 북쪽인 경상남도 밀양시, 울산광역시와의 경계 부근에 높은 산지가 분포하며, 그 남쪽으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두 산지가 중앙의 양산천을 사이에 두고 뻗어 있다. 이들 산지부 사이 골짜기에는 소규모 하천이 흐르며 곳곳에 곡저평야 및 침식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시의 남쪽으로 경상남도 김해시와 경계를 이루며 낙동강이 흐른다.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당곡천 · 염포천 · 원동천(院洞川) · 상림천 · 양산천 등이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양산천지구에서 북동쪽으로 경상북도 경주시의 모화지구 사이에 양산 단층선(梁山斷層線)이 통과하며 독특한 지형적 특징이 나타난다.
북부의 하북면과 웅상 지역에는 영취산(靈鷲山: 1,082m), 취서산(聚西山: 1,059m) · 시살등[981m] · 정족산(鼎足山: 700m) · 천성산(天聖山: 920m) · 대운산(大雲山: 742m), 서부의 원동면 · 물금읍 지역에는 염수봉(鹽水峰: 816m) · 천태산(天台山: 631m) · 토곡산(土谷山: 855m) · 오봉산(五峰山: 450m)이, 그리고 부산광역시와 접한 남부의 동면에는 장군봉(將軍峰: 750m) · 금정산(金井山: 801m) 등이 솟아 있다.
한편 시의 동북쪽에는 대운산 및 천성산에서 발원한 회야강이 북류하여 울산만 쪽으로 흘러간다. 또한 천성산 및 철마산(鐵馬山: 605m)에서 법기천이 발원해 수영강과 합류하여 남류하다가 부산광역시의 수영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지질은 북북동-남남서 주향의 양산 단층선을 경계로 하여 서부는 경상계 신라통의 안산암류와 화강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는 혈암과 사암, 니회암, 섬록색 혈암 등으로 덮인 경상계 신라통의 울산층으로 되어 있다. 식생은 온대림의 특성을 보여 편백나무, 리기다소나무, 오동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기후는 남해안에 인접해 난대성 해양 기후의 영향을 받지만, 내륙의 산간 내륙지역은 한서의 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5℃이며, 1월 평균기온은 4.8℃, 8월 평균기온은 27.5℃, 연평균강수량은 1,796㎜이다. 시의 역대 최저기온은 1936년 겨울이 영하 16.7℃로 가장 낮았고, 1993년 겨울이 영하 6.6℃로 가장 높았다. 최고기온은 1983년 여름이 38.6℃로 가장 높았고 1981년도 여름이 31.3℃로 가장 낮았다. 첫서리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내리고 눈은 12월 하순경에 내리나 다른 지방에 비해서 눈 오는 날이 매우 적으며 연간 5일에 불과하다.
선사시대 인간 주거의 유력한 증거를 제공하는 패총 유적이 여러 곳에 산재하여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이전 유적으로 양산 패총, 하북면 순지리 신평의 청동기 유적, 다방동 패총, 그리고 명곡리 취락지와 부부총 유적이 있다.
양산 지역은 지리적으로 신라 세력의 중심지였던 경주와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김해 사이에 위치한다. 아울러 낙동강 하구의 물금읍에서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언양읍에 이르는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직선상의 긴 골짜기는 역사적으로 낙동강 유역과 경주의 형산강 유역을 연결하는 통로 구실을 하였다. 이를 반증하듯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신라와 가야가 전투를 벌인 기사가 여러 차례 보이며, 이로 미루어 두 세력이 이 일대에서 대립하다 일찍이 신라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665년(문무왕 5)에 신라가 상주(上州) 지금의 [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 하주(下州)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 지역]를 개편해 양산 지역에 삽량주(歃良州)를 신설한 것으로 보아, 삼한시대에 변진 24국 가운데는 불사국(不斯國)과 호로국(戶路國)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757년(경덕왕 16)에 지명을 양주(良州)로 고치고 헌양현(巘陽縣)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일대]을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양주(良州)가 양주(梁州)로 개칭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995년(성종 14) 7월에는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양주는 영동도(嶺東道) 경주목의 관할이었다. 1018년(현종 9)에 방어사를 두었다. 같은 해에 기장현과 헌양현을 울주로 이속하고, 동평현(東平縣) 지금의 [부산광역시 지역]을 영현으로 삼았다. 그러나 원나라의 간섭으로 관제가 개편되면서 밀성군(密城郡)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병합되었다가 1304년(충렬왕 30)에 다시 복구되었다. 속현으로 동평현, 기장현이 있었으며, 별호로는 선춘(宣春), 순정(順正) 등의 이름이 있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지방행정을 개편할 때 양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405년(태종 5)에는 동래현에 이속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세종(世宗: 1397~1450) 대의 인구는 양산군이 425호에 937명, 동평현이 108호에 342명, 기장현이 174호에 397명이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해 군이 황폐해져 동래부에 폐합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복구되었다. 기장현 역시 1599년 동래부에 폐합되었다가 1617년(광해군 9)에 복구되었다. 1759년(영조 35) 기장현의 인구는 2,687호에 1만 630명이었고, 1771년(영조 47) 양산군의 인구는 2,079호에 1만 2178명이었다.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실시되면서 기장현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 전국이 13도로 개편될 때 양산군은 경상남도에 속하며, 양산면 · 동면 · 물금면 · 원동면 · 상북면 · 하북면 · 구포면 · 대저면의 8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광무 10)에는 외남면과 웅상면을 울주군에서 편입하고 구포면을 동래군에, 대저면을 김해군에 이관하였다. 1910년(융희 4)에는 외남면을 다시 울주군에 이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이 기장군을 통합하였다. 1919년 양산 지역에서는 엄주태(嚴柱泰: 1900~1928) 등 청년층이 주도해 3월 27일에 만세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일본 상품 불매와 상하이 임시정부 자금 지원 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경제개발 정책의 와중에 급속히 발전한 양산 지역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했으며, 1973년 7월 1일에는 동래군을 흡수하였다. 1974년 10월 26일 원동면 이천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9년 4월 7일 양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서생면이 울주군에 이속되었다.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1월 1일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기장면 · 장안면 · 일광면 · 정관면 · 철마면을 관할하였다.
1991년 11월 20일 웅상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95년 3월 1일 동부면 등 5개 읍 · 면이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시로 승격되고 양산읍이 중앙동, 삼성동, 강서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물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4월 1일 덕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2004년 1월 3일에는 웅상민원출장소가 설치되었다. 2007년 4월 웅상읍이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으로 분동되었다. 2010년 2월에는 양주동이 중앙동에서 분동되었다.
2024년 기준 양산시는 265건의 국가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경상남도 시 · 군 중 진주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이다. 구체적으로는 42건의 국가지정문화유산[국보 1건, 보물 33건, 사적 7건, 천연기념물 1건, 국가무형유산 2건, 국가등록문화유산 1건 등]과 222건의 시도지정문화유산[유형문화유산 164건, 무형유산 2건, 기념물 8건, 민속문화유산 1건, 문화유산자료 47건 등]이 있다. 특히 관내에 위치한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는 보존 가치가 높은 다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도 국가유산으로 지정될 유물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산시의 구석기시대 유물로는 북정동에서 발견된 사암제 타제 양면핵석기가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다방동에서 무문토기 저부 편이 출토되었다. 조개더미 유적으로는 물금읍 증산리 상리 패총, 남부동 패총이 있다. 신기동의 양산신기리지석묘(梁山新基里支石墓)[경상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는 기반식(碁盤式)으로 된 고인돌이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양산 북정리 고분군(梁山 北亭里 古墳群)[사적, 1963년 지정], 양산 신기리 고분군(梁山 新基里 古墳群)[사적,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양산 중부동 고분군(梁山 中部洞 古墳群)[사적, 1963년 지정]은 동산의 서사면에 있는데 56세기에 조성된 것이며, 웅상 지역의 명곡리 고분군은 고분 북서쪽에서 승석문과 격자문이 타날된 토기가 채집되어 45세기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불교 문화유산 중 통도사 경내의 유물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는 양산 통도사 천왕문(梁山 通度寺 天王門)[2024년 지정], 양산 통도사 봉발탑(梁山 通度寺 奉鉢塔)[1968년 지정]과 양산 통도사 영산전(梁山 通度寺 靈山殿)[2014년 지정],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梁山 通度寺 大光明殿)[2014년 지정],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通度寺 靈山殿 八相圖)[1990년 지정],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通度寺 大光明殿 三身佛圖)[1990년 지정], 양산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梁山 通度寺 靑銅 銀入絲 香垸)[2011년 지정], 양산 통도사 금동천문도(梁山 通度寺 金銅天文圖)[2003년 지정], 사인비구 제작 동종 - 통도사 동종(思印比丘 製作 銅鍾 - 通度寺 銅鍾)[2000년 지정],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6(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四十六)[1984년 지정],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1982년 지정] 등이 있다.
통도사 경내의 유물 중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으로는 통도사 안양암 북극전(通度寺安養庵〈北極殿〉)[1985년 지정]과 양산 통도사 석등(通度寺石燈)[1985년 지정], 양산 통도사 만세루(萬歲樓)[1981년 지정], 양산 통도사 명부전(冥府殿)[1981년 지정], 양산 통도사 용화전(龍華殿)[1982년 지정], 양산 통도사 응진전(應眞殿)[1981년 지정], 양산 통도사 불이문(通度寺 不二門)[1985년 지정], 양산 통도사 청동시루(靑銅시루〈철부포함〉)[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금니묘법연화경(金泥法華經)[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금니금강경 12곡 병풍(金泥金剛經)[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경판(通度寺經板)[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청동여래좌상 및 청동사리탑(靑銅如來坐像,靑銅舍利塔)[1979년 지정], 양산 통도사 청동여래 입상(靑銅如來立像)[1979년 지정] 등이 있다.
하북면 백록리에 있는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梁山 通度寺 國長生 石標)[보물, 1963년 지정]는 사찰의 경내를 표시하는 기능을 한다. 소주동에 있는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梁山 彌陀庵 石造阿彌陀如來立像)[보물, 1989년 지정]은 석굴 속에 있는데 이 석굴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포천산 석굴로 비정된다. 동면에 있는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입상(架山里磨崖如來立像)[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2년 지정]과 물금읍에 있는 양산 용화사 석조여래좌상(梁山 龍華寺 石造如來坐像)[보물, 1968년 지정]은 통일신라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조각 형식을 보인다. 또 호계동의 양산 호계리 마애여래좌상(梁山虎溪里磨崖佛)[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 원동면 영포리의 양산 신흥사 대광전(梁山 新興寺 大光殿)[보물, 1992년 지정], 주남동의 양산 안적암 대웅전(安寂庵)[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교동에 양산향교(梁山鄕校)[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1982년 지정]가 있고, 양산 우불산 신사(于佛山 神祠)[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91년]와 상북면 소토리의 소노서원(小魯書院) · 소계서원(蘇溪書院), 물금읍 가촌리의 송담서원(松潭書院) 등이 유명하다. 산막동에는 칠현사(七賢祠)가 있다. 하북면 삼수리에 있는 양산이씨 종가 고문서(梁山李氏 宗家 古文書)[보물, 1989년 지정]는 조선 전기에 작성된 16점의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영취산 아래에 통도사를 창건한 이래 통도사 앞마당에서 시연되어 온 ‘양산사찰학춤’이 있다. 24개에 이르는 학의 동작을 본뜬 춤으로, 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어산법패’가 공연의 일부를 구성한다. 웅상농청장원놀이[경상남도 무형유산, 2002년 지정]는 한 해 농사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농사의 전 과정을 희극적으로 풀어 낸 놀이이다. 가야진룡신제(伽倻津龍神祭)는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양산 가야진사(伽倻津祠)[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 1983년 지정]에서 지내던 제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제사로,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관방 유적으로는 양산 북부동 산성(梁山 北部洞 山城)[사적, 1963년 지정], 신기동의 양산 신기리 산성(梁山 新基里 山城)[사적, 1963년 지정], 물금읍의 양산 증산리 왜성(勿禁 甑山里 倭城)[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1998년 지정], 상북면 석계리의 제2로 직봉 - 양산 위천 봉수 유적(第2路 直烽 – 梁山 渭川 烽燧 遺蹟)[사적, 2023년 지정] 등이 있다.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부동의 양산 효자리비(孝子里碑)는 박창(朴暢)과 이공미(李公美)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동면의 양산 법기리 요지(梁山 法基里 窯址)[사적, 1963년 지정],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梁山 新田里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971년 지정] 등도 유명하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교동의 양산향교는 1406년(태종 6)에 창건되었다. 서원의 경우 상북면 소토리에 1672년(현종 13) 설립된 율리정사(栗里精舍)와 1783년(정조 7)에 건립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후 다시 복원된 소계서원, 1836년(헌종 2)에 건립된 소노서원이 있다. 물금읍 가촌리에는 1836년 설립된 송담서원 등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9년(융희 3) 양산향교 내에 사립 원명학교 지금의 [양산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각 면마다 근대적인 학교가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지금의 양산중학교가 개교해 중등교육이 실시되었다. 1990년에는 고등 교육기관으로 양산전문대학 지금의 [동원과학기술대학교]이 설립되었다. 2025년 3월 1일 기준 양산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3개, 중학교 19개, 고등학교 13개가 있으며, 대학교로는 동원과학기술대학교와 영산대학교 양산캠퍼스,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가 있다.
교육 및 문화시설로는 평생학습관인 양산지혜마루가 있다. 양산시는 2006년 7월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되고 평생학습도시로서의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양산지혜마루는 2023년 9월에 준공되어 지역민들에게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으로는 양산시립도서관, 웅상도서관, 영어도서관, 양산도서관 등 4개가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지신밟기, 줄다리기, 씨름, 그네뛰기, 장치기 등이 있다. 지신밟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농민들이 다양한 복색으로 차리고 농악을 울리며 지신을 밟아 주는 놀이이다. 상쇠 1명, 종쇠 2명 등 총 26명으로 이루어진 농악대가 농악을 울리며 성황당에서 지신밟기를 한 뒤 마을로 들어가 각 집을 돌면서 「마당풀이」 · 「성주풀이」 · 「조왕풀이」 등의 사설을 하며 집안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한다.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 2월 풍신제, 5월 단오, 8월 한가위에 온 마을 사람이 두 편으로 나누어 힘을 겨루는 놀이이다. 옛날에는 집집에서 모은 짚으로 1㎞가 넘는 암줄과 수줄을 만들어 지금의 남부동 상설시장 자리에서 북부동까지 줄을 늘어놓고 풍물을 울리며 즐기는 마을의 큰 행사였으나 현재는 그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1977년의 동제(洞祭) 조사에 따르면, 당산신을 모시는 당산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제일(祭日)은 상원(上元)이 대부분이고 3월 3일과 9월 9일도 있다. 해변가의 별신굿은 내당 열세 거리와 외당 열아홉 거리로 구성되며, 총 1520명 정도가 진행하는 큰 행사로서, 각 거리마다 무인[선창자(先唱者)] 한 사람과 무부(巫夫)[바라지] 34명이 어우러져 치른다.
양산 지역에는 통도사 · 가야진사 등의 유래를 밝힌 연기전설(緣起傳說)과 원효(元曉: 617686) · 의상(義湘: 625702)에 대한 인물전설 등 많은 설화가 전한다. 통도사 창건 설화는 『삼국유사』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져 있으며, 통도사 대웅전 뒤에 있는 구룡신지(九龍神池) 또한 자장과 얽힌 유래담이 전한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통도사를 지으려 할 때 연못가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자장은 독경을 외워 용을 물리치고자 했으나 용들이 불응하므로 법력으로 용들과 격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때 세 마리의 용은 달아나다가 바위에 부딪혀 피를 토하고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용혈암(龍血巖)이라 부르게 되었고, 다섯 마리는 영취산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죽었으므로 이곳을 오룡곡(五龍谷)이라 불렀다. 나머지 한 마리는 연못에 남아 절터를 지키게 하고 그 연못을 구룡신지라 하였다.
원동면의 낙동강 나루에 있는 가야진사도 용과 전령에 얽힌 유래담을 가지고 있다. 신라 때 양주의 전령 하나가 문서를 가지고 길을 가다 이곳 주막에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전령의 꿈에 용이 나타나더니, 자기 남편이 첩만 가까이 하니 첩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다음 날 꿈에서 시킨 대로 바위틈에 숨어 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두 마리의 용이 나타나자 다급해진 전령은 그중 하나를 무심결에 내리쳐서 죽였는데, 알고 보니 남편 용이었다. 그러자 화가 난 본처 용이 나타나 전령을 끌고 용궁으로 사라졌고, 그 뒤로 마을에 재앙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사당[가야진사]을 짓고 해마다 세 마리 용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원효에 관한 전설로는 하북면 천성산의 「원효암전설」이 유명하다. 하루는 원효가 암자에서 중국 땅을 바라보니, 산둥성 법운사(法雲寺)에서 1,000명의 신도가 불공을 드리고 있는데 법교(法敎)를 잘못한 죄로 절이 무너져 전부 몰살될 처지였다. 이에 원효가 ‘해동원효’라 적힌 판자를 던져 신도들을 밖으로 나오게 유도했고, 모두 화를 면했다. 이 일 이후 그 신도들이 원효에게 찾아와서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원효가 산신령의 계시를 받아 그들을 이끈 곳이 지금의 원효암(元曉庵) 자리로, 한겨울에도 칡꽃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산막리(山幕里)와 반고굴(磻高窟) 전설」 · 「혁목암전설(赫木庵傳說)」 등이 원효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 외에 「박초이야기」 · 「매바위」 · 「심동대굴」 · 「삼수리(三帥里)와 삼장수(三將帥)」 · 「오의정(烏義亭)」 · 「철마(鐵馬) 이야기」 등이 전해 온다.
양산 지역에서 전하는 민요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모심기노래」를 중심으로 한 농요와 멸치잡이 할 때 부르는 어로요(漁撈謠)이다. 「모심기노래」는 “비 묻었네, 비 묻었네 / 양산 땅에 비 묻었네 / 그 비가요, 비 아니라 억만군사의 눈물일세”와 같이 4음보의 전 · 후 절이 대구 형식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내용의 사설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모찌는 노래」나 「밭매기노래」 또한 4음보 형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구성을 보여 주며, 「모심기노래」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멸치잡이 후릿노래」는 「놓는소리」, 「망께소리」, 「가래소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앞의 둘이 율동을 위한 소리라면 뒤의 「가래소리」는 풍어를 비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놓는소리」는 그물을 바다에 놓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10여 명의 어부가 두 패로 나뉘어서 부르는 교환창이다. 「망께소리」는 「사리소리」고도 하며, 그물에 고기가 다 들어간 뒤 망께, 즉 그물의 줄을 잡아당기는 얼레로 줄을 당기면서 부르는 노래로 역시 교환창이다.
「가래소리」는 끌어올린 물고기 포대에서 멸치를 가래로 풀어 내릴 때 부르는 소리이다. 먼저 “돌려라 돌려라 도도리를 돌려라 / (후렴) 에헤라 차 감아 보자”라는 사설로 시작해 자신들의 신세타령을 한바탕 늘어놓은 뒤 모두 힘을 다해 많은 고기를 들어 올리자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아울러 「삼장수민요(三將帥民謠)」라는 노래도 전한다. 고려 후기 공민왕(恭愍王: 1330~1374) 대에 순찰사였던 이전생(李全生: ?~1450)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 여기가 당대에 세 장수가 태어날 명당임을 알고 이사하여 3남 2녀를 얻었고, 후일 아들 삼 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해 판중추[종1품]까지 지낸 명장수가 되었다는 옛일을 기리는 노래이다. “날개가 달리신 용마를 타고, 갑옷을 입으신 장수가 됐네” 등의 사설에 후렴 “방아로구나 방아로구나, 양산아 고을에 삼장수 났네”가 달린다.
이 외에도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농민들이 벼슬아치, 포수, 농악대 차림으로 집집을 찾아다니며 지신(地神)을 위로하는 농악으로, 도시 탈춤의 전 형태인 농촌 탈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양산시의 총면적 중 농경지는 54.10㎢이며, 나머지 지구는 임야 및 기타 지역으로 되어 있다. 경지는 논이 40.80㎢, 밭이 13.36㎢로서 각각의 점유비는 논이 75.4%, 밭이 24.6%로, 논이 밭보다 약 2배가량 많이 경작된다. 농가인구는 2,875가구, 6,117명으로서 농가 인구율은 약 1.7%이다.
주요 작물로는 주곡인 쌀을 비롯해 보리 · 콩 · 잡곡 등이 재배되며 참깨 · 들깨 · 피마자 · 해바라기 등의 특용작물과 고등 채소 등의 원예작물이 경작되고 있다. 대도시 근교 지대의 이점을 활용해 기업적 축산업도 활발한데, 우유 생산을 목적으로 한 젖소 사육과 함께 양계 산업이 활발한 편으로, 경상남도 시 · 군 중에서는 제일 높게 나타나며, 양계업의 경우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한다. 축산업은 주로 상북지구 · 웅상지구에 집중되어 있다.
2021년 기준 총 사업체 수는 4만 1370개이고, 총 종사자 수는 16만 4808명이다. 경상남도 전체에서 양산시의 사업체 수는 7.2%, 종업원 수는 12%를 차지한다. 농림수산업 관계의 서비스업은 34개 업소에 170명이 고용되어 있다. 2차산업에 속하는 광공업의 경우 관내에 11개의 광구가 소재하며, 5개 업소가 광업 관계 활동을 통해 33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제조업은 5,631개 업소에 5만 1668명이 고용되어 있다.
양산 지역은 공업단지 개발이 마무리되면서 공업용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부산광역시의 수요를 부분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 덕분에 경상남도 전체 광공업 취업자의 약 10% 이상을 차지하고, 창원시 다음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많다.
상업 및 서비스업 등 3차산업에 종사하는 사업체는 총 1만 2988개로, 이 구조는 이 지역이 활발한 공업 기능을 지원하는 생산 · 유통 · 금융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시민 생활에 필요한 소비 기능도 고르게 갖추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러 개의 정기시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서창동의 서창장과 상북면의 석계장은 매월 끝자리가 4일과 9일에, 덕계동 덕계장과 하북면 신평장은 매월 3일과 8일에, 물금읍 물금장은 매월 5일과 10일에 열린다. 주요 거래 품목으로는 갈치, 고등어, 게 등 어류와 밤, 감 등이 있다. 다만, 생활 필수품은 인접한 부산광역시의 대형 백화점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교통은 국도 7호선, 국도 35호선이 울산광역시와 부산광역시를 남-북 방향으로 연결하고,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울산광역시와 부산광역시, 그리고 중앙고속도로지선을 통해 경상남도 김해시 방향으로 연결된다. 또한 경부선 철도가 시 남서쪽의 낙동강 변을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부산광역시와 연결되는 등 대체로 편리한 편이다. 지방도는 총 6개 노선으로 연장은 140㎞이다. 또한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김해-좌천]과 김해 · 원동 · 상북[울산]을 연결하는 국가지원지방도 69호선이 지나고 있다. 경부선과 경부고속철도 등 2개의 철도 노선이 운영되고 있고, 부산지하철 2호선이 양산역까지 운행되며 호포 차량기지가 있다.
양산은 수려한 산천과 고찰이 많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양산의 명산인 영취산 및 취서산의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통도사는 경상남도 합천군의 해인사(海印寺), 전라남도 순천시의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우리나라 3보 사찰 중의 하나로, 대웅전을 비롯해 보물급의 수많은 불교 유산이 산재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여기에 통도사에 이르는 약 1.5㎞의 노송 숲길이 터널처럼 이어지며 선경을 방불케 하여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다.
천성산은 산천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계곡에는 통도사의 말사이자 비구니들의 수도장인 내원사(內院寺)가 있어 시인 묵객과 탐승객이 줄지어 찾는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4㎞ 떨어진 원효산(元曉山: 922m) 계곡의 홍룡폭포도 이 고장이 자랑하는 절경 중 하나이다.
418년(눌지왕 2)부터 757년까지 약 340여 년간 불려 온 양산의 옛 이름 ‘삽량’을 딴 ‘양산삽량문화축전’은, 지역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이어받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예술축제이다. 1986~2004년까지 ‘삽량문화제’라는 명칭으로 개최되다 2006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며, 양산삽량문화전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다.
가야진룡신제[경상남도 무형유산]는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에서 지내던 제사를 기본으로 형상화한 용신제이다.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지내는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통도사 개산조인 자장율사의 제삿날인 음력 9월 9일을 전후해 열리는 개산대제는 자장율사에 대한 추모와 통도사 창건을 축하하는 행사로서, 개산대제 법요식과 자장율사 가사 친견, 기념 합창제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린다. 이 외의 축제로는 ‘황산 가든 페스티벌’, ‘양산젊음의거리 공연’ 등이 있다.
2002년에 준공한 남부동의 양산문화예술회관은 대공연장 및 소공연장과 전시실, 야외공연장, 연습실 등이 있으며 명실공히 양산 문화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북면 지산리에 위치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사찰에 전래된 문화유산을 보존 · 전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일반 대중의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1999년에 개관하였다. 국보 1점과 보물 17점을 비롯하여 약 3만여 점의 불교 유산을 전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 전문박물관이다.
이 외에도 통도환타지아, 법기수원지 등의 유원지 및 휴양 시설, 에덴밸리 리조트스키장, 낙동강 생태탐방선을 운영하는 황산선착장, 각 사찰의 템플스테이와 도자기 제작 등의 체험 관광지 등이 있다.
체육시설로는 종합운동장이 2개, 체육관 1개, 테니스장 3개, 게이트볼장이 1개 있다. 북부동의 양산종합운동장은 주경기장 및 실내체육관과 보조경기장을 갖추고 시의 각종 체육 경기 및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골프장도 있는데, 36홀 규모의 현대식 국제 골프장인 통도파인이스트컨트리클럽, 27홀로 구성된 동부산컨트리클럽, 매곡동의 에이원컨트리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양산시의 남서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9.61㎢이고, 인구는 11만 6836명이다. 물금읍 행정복지센터가 물금리(勿禁里)에 있다.
본래 양산군 상서면(上西面) 지역으로 화룡리 · 어곡리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11개 리가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8년 화학동을 물금동으로 고치고, 1939년 면 이름도 물금면으로 고쳤다. 1983년 어곡리 · 유산리 및 교리 일부가 양산읍에 편입되었으며, 1996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물금리 · 증산리(曾山里) · 범어리(凡魚里) · 가촌리(佳村里) 등 4개 법정리가 있다.
북쪽에 양산 시내가 있고 동면의 경계에 오봉산이 있다. 동쪽의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양산천 주변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보리 · 감자 · 대파 등이다. 기후가 알맞아 우무[한천(寒天)]가 잘 되고 생산 공장도 있다.
교통은 남서쪽 낙동강 변을 따라 경부선이 통과하며, 면의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양산-삼랑진 간 지방도 1022호선이 지나간다. 면의 동남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분기된 중앙고속도로지선이 김해시 방향으로 나 있다. 부산지하철 2호선이 읍 동부를 경유하며, 증산역과 부산대양산캠퍼스역이 위치한다. 부산광역시의 교외 도시로서 양산신도시 등의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많은 농경지가 시가지로 변모하였다. 증산리에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및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이 들어서 있다.
문화유산으로 물금리 용화사(龍華寺) 법당에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지금의 김해시 상동면 감로사 터에 있던 것을 조선 후기에 옮겨 왔다고 한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양산 증산리 왜성은 임진왜란 때 축조된 성이다. 가촌리에 송담서원, 백수회정려각(白受繪旌閭閣)과 소한정(小閒亭)이 있다. 공원으로 낙동강 변의 황산공원과 양산천 변의 양산워터파크, 오봉산 아래에 양산디자인공원이 있다.
양산시의 동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6.35㎢이고, 인구는 5만 5030명이다. 동면 행정복지센터가 내송리(內松里)에 있다.
본래 양산군 동면 지역으로 가산리(架山里) · 금산리(錦山里)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면의 녹동 · 송정동의 각 일부와 부산부 좌이면의 공창동 일부를 병합해 현재와 같은 내송리 · 가산리 · 금산리 · 사송리(沙松里) · 여락리(余洛里) · 법기리(法基里) · 개곡리(開谷里) · 석산리(石山里) 등 8개 법정리가 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북쪽의 천성산과 남쪽의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지가 분포한다. 동쪽은 남북으로 흐르는 수영강을 따라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계를 이루며, 금정산에서 발원한 다방천(多芳川)이 서북쪽으로 흐른다. 두 하천의 강변을 따라 소규모 곡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을 비롯해 배 · 미나리 · 당근 등이 재배된다. 교통은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과 지방도 1077호선 및 국도 7호선 등을 통해 부산광역시와 연결되어 편리하다. 부산광역시와 인접한 양산천과 다방천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문화유적으로 법기리에 도요지가 있고, 금산리에 금호사(琴湖祠), 가산리에 호포 왜성지(狐浦 倭城址)가 남아 있다. 남쪽의 금정산을 비롯하여 가산수변공원 · 양산수질정화공원 등의 많은 근린공원이 분포한다.
양산시의 중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8.47㎢이고, 인구는 1만 3435명이다. 상북면 행정복지센터가 석계리(石溪里)에 있다.
본래 양산군 상북면 지역으로 소토리(所土里) · 대석리(大石里)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북면의 상삼리(上森里) · 좌삼리(左森里) 등 6개 리를 폐합하고 현재와 같은 석계리 · 소토리 · 대석리 · 상삼리 · 좌삼리 · 외석리(外石里) · 내석리(內石里) · 신전리(新田里) · 소석리(小石里) 등 9개 법정리가 되었다.
동쪽의 천성산, 서쪽의 원동면과의 경계에 있는 염수봉 등에서 발원한 계류가 면의 중앙에 흐르는 양산천으로 흘러든다. 주요 농산물은 당근 · 단감이며, 양돈업과 양계업이 발달하였다.
양산천을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지방도 1018호선 및 국도 35호선이 경유하며 부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주시 방향과 연결된다. 최근 양산석계일반산업단지 등 제조업 생산 시설이 들어섰다. 양산천에서는 녹두색 바탕에 흰 석영질이 섞여 이루어진 폭포경석(瀑布景石)과 잔설경석(殘雪景石), 홍옥석(紅玉石)이 생산된다
문화유적으로 장방형 수혈식의 고분군이 있고, 양산 석계리의 이팝나무(梁山 石溪里의 이팝나무)와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梁山 新田里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소토리에 위치한 소계서원 뜰에 대원군 척화비(大院君 斥和碑)가 있다. 또한 양산 박제상 유적. 효충사(朴堤上遺蹟孝忠祠)는 경상남도 기념물이다. 이 외에 소노서원, 율리정사, 석계리의 현효정려(賢孝旌閭) 등 유교 관련 유산이 다수 분포한다.
양산시의 북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48.02㎢이고, 인구는 3,191명이다. 원동면 행정복지센터가 원리(院里)에 있다.
본래 양산군 하서면(下西面) 지역으로 명언리 · 지라리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밀양군 하동면 검세리 일부를 병합해 화제리(花濟里) · 서룡리(西龍里) 등 8개 리로 재편되었다. 1942년 원동의 이름을 따서 원동면으로 하였고, 1962년 이천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용당리 신곡마을을 분동하고, 1991년 화제리 토교마을을 분동하였다. 원리 · 용당리(龍塘里) · 내포리(內浦里) · 영포리(泳浦里) · 서룡리 · 화제리 · 선리(善里) · 대리(大里)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면의 대부분은 북쪽의 신불산(神佛山: 1,159m)과 남쪽의 토곡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남부 지역은 동쪽 상북면과의 경계에 있는 염수봉과 북서쪽 경상남도 밀양시와의 경계에 있는 향로봉(香爐峰: 727m) 등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해 원동천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로 쌀을 비롯해 보리, 수박, 딸기, 매실 등이 많이 생산된다. 영포리는 예로부터 닥나무를 원료로 만든 양질의 한지(韓紙) 생산지였다. 원동천 상류에서 주로 발견되는 매화석(梅花石)도 유명하다. 북부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흘러오는 배내천이 흘러 밀양시의 단양천(丹陽川)으로 흘러든다. 남서쪽의 낙동강 변을 따라 경부선이 통과하며, 국가지원지방도 69호선과 지방도 1022호선이 양산시 도심과 밀양시 삼랑진읍 방면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산으로 영포리의 신흥사에 보물로 지정된 양산 신흥사 대광전과 양산 신흥사 대광전 벽화(梁山 新興寺 大光殿 壁畵) 등이 있으며, 용당리에 가야진사가 있다. 또 원리에 세덕사(世德祠), 화제리에 임경대(臨鏡臺)[일명 고운대]가 있다. 함포리의 이팝나무, 선리의 느티나무도 유명하다. 근래에 토곡산 북쪽에 원동자연휴양림 캠핑장과 낙동강 변에 원동습지생태공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양산시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8.65㎢이고, 인구는 7,462명이다. 하북면 행정복지센터가 순지리(蓴池里)에 있다.
본래 양산군 하북면 지역으로 용연리(龍淵里) · 삼감리(三甘里)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언양군 삼동면 조일동 일부를 병합해 용연리 · 삼감리 등 8개 리로 재편하였다. 순지리 · 백록리(白鹿里) · 용연리 · 삼수리(三帥里) · 삼감리 · 초산리(草山里) · 지산리(芝山里) · 답곡리(畓谷里)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면의 대부분이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의 정족산(鼎足山: 748m), 서쪽 원동면과의 사이에 있는 시살등과 남동쪽의 천성산 · 원효산, 북단의 영취산 · 취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면의 중앙으로 흐르는 양산천으로 흘러든다. 양산천 주변으로는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을 비롯해 당근이 많이 생산된다. 면의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며, 이와 평행하게 부산-경주 간 국도 35호선이 통과한다. 양산천의 홍옥석(紅玉石)과 통도사 사명암을 중심으로 자생하는 차(茶)와 백록리의 복조리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일부 농경지가 제조업 공장용지로 변경되었다.
문화유산으로 백록리에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보물]가 있다. 지산리의 통도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등 많은 지정 문화유산이 있다. 또 내원사 및 내원사 계곡에도 다수의 불교 유적이 분포한다. 최근에 통도환타지아와 대규모 골프장 등 관광 및 레저 스포츠 시설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