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일청(一靑). 서울 출신. 1924년 하고 1927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34년 경성조선인변호사회 부회장을 지냈다.
조병옥(趙炳玉)·여운형(呂運亨)·안창호(安昌浩) 및 광주학생사건에 관련된 사람들과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들의 형사변론을 맡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으로부터 경성공소원판사로 임명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퇴하였다.
정부수립 후 다시 지방법원장과 대법관 취임교섭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변호사로서 50년간 국민의 권리옹호에 종사하였다. 1970년 서울변호사회장, 1971년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