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신.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였다.
또한 신성중학교와 보성여학교를 설립하였고, 1911년에는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1919년 2월 12일에는 김병조(金秉祚) 등과 3·1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 호응하여 이명룡(李明龍)과 함께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기로 약속하고, 민족대표로서 서명날인하기 위하여 자신의 인장을 함태영(咸台永)에게 보관하게 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의 태화관에 손병희 등과 함께 민족대표로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붙잡혀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