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세자궁(世子宮)의 종2품 내관(內官)으로 위상이 제일 높은 세자의 후실.
설치 목적
임무와 직능
1452년(문종 2) 4월에 세자빈을 간선(揀選)할 때에 양제까지 간택하고자 하였다. 1537년(중종 32)에 삼공들은 양제를 간택하여 후방(後房)의 일을 돕게 하는 것은 내덕을 돕고 후사를 많이 보려고 하는 것이니, 간택하는 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먼저 문벌과 가법(家法)을 선택해야 하고, 또 현숙한 여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종 대에는 양제를 간택하기 위해 가례청(嘉禮廳)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변천사항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남사(南史)』
- 『당서(唐書)』
- 『당육전(唐六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단행본
- 이미선, 『조선왕실의 후궁-조선조 후궁제도의 변천과 의미』(지식산업사, 2021)
논문
- 이영숙, 「조선초기 내명부에 대하여」(『역사학보』 96, 1982)
- 김선곤, 「이조초기 비빈고」(『역사학보』 21, 역사학회, 196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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