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대심리유적(楊平大心里遺蹟)은 1972년 서울대학교의 임효재가 처음 발견한 유적이다. 1972년 8월 4일부터 같은 해 8월 20일까지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와 박물관이 팔당댐 건설에 따른 수몰 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양평대심리유적은 총 11개의 층위로 구분되지만, 홍수와 잦은 경작 등으로 층위 구분은 의미가 없다. 대부분 유물은 가장 상층의 암갈색 사질토층에서 출토되었다.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출토된 토기류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원삼국시대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신라 토기 및 고려∼조선시대 토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중도식 민무늬토기 출토 비율이 가장 높다. 석기는 뗀석기, 간석기가 출토되었는데, 뗸석기와 떼어 낸 조각이 가장 많았다. 뗀석기와 간석기는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조사 지역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Square A'에서는 토기뿐만 아니라 도끼, 화살촉, 손칼, 호미 등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양평대심리유적에서 철기 생산의 부산물인 철 찌꺼기가 10여 점이 발견되었고, 조사 지역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사철층(沙鐵層)이 있는 점에서 원시적인 수준의 주철(鑄鐵) 기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평대심리유적은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채집되었지만, 원삼국시대 토기류와 철기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유물포함층(遺物包含層) 유적이다.
비록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원삼국시대 마을 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에서는 철기 생산 흔적이 발견된 마을 유적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춘천우두동유적, 가평대성리유적, 양평양수리유적 등이 있다. 따라서 양평대심리유적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연결한 철기의 생산과 유통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