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갈래창 (쇠갈래)

선사문화
물품
쇠창의 세로날 중간에 가로날이 달려 있는 중국 전국시대∼한나라시대 무기.
이칭
이칭
철극(鐵戟), 쇠가지창
물품
재질
용도
무기
제작 시기
철기시대~초기국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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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쇠갈래창은 쇠창의 세로날 중간에 가로날이 달려 있는 중국 전국시대∼한나라시대 무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삼국시대 낙랑 무덤과 가평 달전리 2호분에서 쇠갈래창이 출토되었다. 쇠갈래창은 세로날을 나무봉과 결구하는 형식에서 세로날 밑에 투겁을 만들어 나무봉에 끼우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정의
쇠창의 세로날 중간에 가로날이 달려 있는 중국 전국시대∼한나라시대 무기.
연원

쇠갈래창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청동제로 등장하였으며, 서한대(西漢代)에는 주로 쇠로 만든 것이 유행하였다. 쇠갈래창은 한반도에서 낙랑군 설치 이후에 처음 등장하고, 우리나라 서북한 지역 평양의 낙랑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었으며, 가평 달전리 2호 무덤에서도 출토되었다.

형태

전국시대까지는 세로날에 뚫려 있는 여러 개의 구멍을 실이나 가죽을 이용해 긴 나무봉과 결구해서 사용하는 형식이 유행하였는데, 중국 이시엔〔易縣〕 옌시아두〔燕下都〕 M44호분 출토품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달리 쟝샤〔長沙〕 초왕(楚王) M365호분 출토 쇠갈래창은 세로날 윗부분이 곡선을 띠고 있다. 이외에도 가로날이 앞으로 휜 것, 뒤로 휜 것 등 다양한 형태가 발견된다.

변천 및 출토 사례

한대에는 세로날 밑부분을 투겁으로 만들어 끼우고 가로날을 곡선으로 만든 형식과 가로날 대신 도끼를 끼우는 형식이 새롭게 등장한다. 쇠갈래창의 사용 모습은 중국 한대 화상석(畵像石)에서 볼 수 있는데 가로날로 적의 기병을 끌어내린 후 세로날로 찔러 살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쇠갈래창은 평양 상리, 석암리 201호, 용산리 고분, 정백동 1호, 53호, 987호, 토성동 178호, 486호 등 서북한 지역 평양의 낙랑 무덤과, 2002년 가평 달전리 2호 무덤에서 한 점이 출토되었다. 서북한 및 중부 지역에서 출토된 쇠갈래창은 모두 가로날이 직각을 이루고, 나무봉에 결구하는 형식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낙랑일대의 무덤』(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9)
『가평 달전리유적』(한림대학교박물관, 2007)
白雲翔, 『先秦兩漢鐵器的考古學硏究』(科學出版社, 2005)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林巳奈夫 編, 『漢代の文物』(京都大學人文科學硏究所, 1976)

논문

백련행, 「룡산리 고분 정리 보고」(『문화유산』 4, 1962)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경신(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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