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갈래창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청동제로 등장하였으며, 서한대(西漢代)에는 주로 쇠로 만든 것이 유행하였다. 쇠갈래창은 한반도에서 낙랑군 설치 이후에 처음 등장하고, 우리나라 서북한 지역 평양의 낙랑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었으며, 가평 달전리 2호 무덤에서도 출토되었다.
전국시대까지는 세로날에 뚫려 있는 여러 개의 구멍을 실이나 가죽을 이용해 긴 나무봉과 결구해서 사용하는 형식이 유행하였는데, 중국 이시엔〔易縣〕 옌시아두〔燕下都〕 M44호분 출토품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달리 쟝샤〔長沙〕 초왕(楚王) M365호분 출토 쇠갈래창은 세로날 윗부분이 곡선을 띠고 있다. 이외에도 가로날이 앞으로 휜 것, 뒤로 휜 것 등 다양한 형태가 발견된다.
한대에는 세로날 밑부분을 투겁으로 만들어 끼우고 가로날을 곡선으로 만든 형식과 가로날 대신 도끼를 끼우는 형식이 새롭게 등장한다. 쇠갈래창의 사용 모습은 중국 한대 화상석(畵像石)에서 볼 수 있는데 가로날로 적의 기병을 끌어내린 후 세로날로 찔러 살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쇠갈래창은 평양 상리, 석암리 201호, 용산리 고분, 정백동 1호, 53호, 987호, 토성동 178호, 486호 등 서북한 지역 평양의 낙랑 무덤과, 2002년 가평 달전리 2호 무덤에서 한 점이 출토되었다. 서북한 및 중부 지역에서 출토된 쇠갈래창은 모두 가로날이 직각을 이루고, 나무봉에 결구하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