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가평 달전리 유적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집터와 널무덤 · 덧널무덤 관련 생활유적이다. 경춘선 복선전철의 가평역사 부지 내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수혈 41기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4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선송국리유형의 주거지로 중부지역의 송국리문화 형성 및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주목되는 자료이다. 토광묘에서는 화분형토기, 세형동검, 환두소도 등이 출토되었는데, 그 시기와 성격에 대해 초기철기시대로 분류할 수 있는 고조선의 유적이라는 견해와 원삼국시대에 속하는 한군현의 낙랑의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덧널무덤 관련 생활유적.
개설
내용
초기철기시대 토광묘는 널무덤[木棺墓] 또는 덧널무덤[木槨墓]의 형태로 4기가 분포한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3호 덧널무덤은 320×145×105(잔존깊이)㎝의 남북장축을 갖는 토광이며, 단을 만들고 255×105㎝의 곽(槨)을 설치한 후 230×68㎝의 관을 안치한 형태이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는 화분모양 토기와 단경호가 있으며, 철기는 안테나식 철제단검, 철제 환두소도(環頭小刀), 철극(鐵戟), 철도끼, 철낫, 철재갈 등이 있다. 청동제품으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이 1점 나왔다.
이와 같은 토광묘와 출토유물의 시기 및 성격에 대해서 두 가지 다른 입장이 있다. 하나는 기원전 2세기대의 고조선의 물질문화로 보는 견해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원전 1세기 중국의 한군현(漢郡縣: 한사군)에 해당하는 낙랑과 관련된다는 주장이 있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초기철기시대로 분류되며, 후자의 입장에서는 원삼국시대에 속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토광묘는 무덤의 형태와 화분모양 토기, 세형동검, 환두소도, 철극, 재갈 등 껴묻거리(부장품)의 양상은 서북한지역과 관련이 깊다. 이것이 낙랑군 설치 이전의 고조선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랑군의 물질문화에 속하는 지에 따라 그 시기와 성격이 달라진다. 달전리 유적의 토광묘가 고조선 또는 낙랑 가운데 어느 쪽으로 판명되든지 간에 한국 상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문헌
- 『한국 출토 외래유물 초기철기~삼국시대』(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1)
- 『가평 달전리유적-청동기시대 취락-』(한림대학교박물관, 2007)
- 「가평 달전리 토광묘 발굴의 의미」(노혁진, 『한국의 고고학』창간호, 주류성출판사, 2006)
- 「경춘복선 가평역사부지(달전리) 발굴조사」(박성희, 『고구려 고고학의 제문제』, 제27회 한국고고학 전국대회 발표자료집,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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