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달전리유적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2리 603-10번지 일원에 있으며, 경춘선 복선전철의 가평역사 부지 내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한림대학교박물관이 2002∼2003년에 발굴조사를 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수혈 41기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4기 등을 확인하였다. 이 가운데 화분형토기, 세형동검, 환두소도, 철극 등이 출토된 토광묘는 고조선 또는 낙랑군과 관련되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전기에서 중기에 걸치는 시기에 속하는데,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평면으로 대부분 무시설식 화덕이 1∼2개씩 있다. 다만 33호 주거지는 돌을 돌려서 만든 위석식(圍石式) 화덕이 2개 있으며 기둥을 받치는 초석도 있는 점에서 볼 때 가락동유형의 주거지와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 내부의 가운데에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2주공이 있는 휴암리식주거지와 이색점토구역이나 작업공이 있는 주거지는 중기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공렬토기와 주상편인석부가 출토된 8호 주거지는 ‘선송국리유형’ 단계의 주거지로서 주목된다. 이는 경기 남부지역에서 최근 증가하고 있는 주거지들과 함께 송국리문화의 형성 및 전개과정을 검토하는 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자료이다. 토기는 무늬가 없거나 구멍무늬[孔列文]가 시문된 토기가 많으며 굽다리토기나 골아가리짧은사선문[口脣刻目短斜線文]이 있는 것도 있다. 석기는 무기 또는 수렵구(석검·석촉·석창)를 비롯하여 농경구(석부·석도·굴지구), 목가공구(석착·주상편인석부), 식량가공구(갈돌·갈판), 어업구(어망추), 방직구(방추차),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철기시대 토광묘는 널무덤[木棺墓] 또는 덧널무덤[木槨墓]의 형태로 4기가 분포한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3호 덧널무덤은 320×145×105(잔존깊이)㎝의 남북장축을 갖는 토광이며, 단을 만들고 255×105㎝의 곽(槨)을 설치한 후 230×68㎝의 관을 안치한 형태이다. 무덤에서 나온 토기는 화분형토기와 단경호가 있으며, 철기는 안테나식 철제단검, 철제 환두소도(環頭小刀), 철극(鐵戟), 철도끼, 철낫, 철재갈 등이 있다. 청동제품으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이 1점 나왔다.
이와 같은 토광묘와 출토유물의 시기 및 성격에 대해서 두 가지 다른 입장이 있다. 하나는 기원전 2세기대의 고조선의 물질문화로 보는 견해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원전 1세기 중국의 한군현(漢郡縣)에 해당하는 낙랑과 관련된다는 주장이 있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초기철기시대로 분류되며, 후자의 입장에서는 원삼국시대에 속하게 된다.
가평달전리유적의 청동기시대 물질문화는 공렬토기를 제작하고 사용했던 사람들이 남긴 것이 대부분이며 북한강유역의 마을 연구에 도움이 된다. 집자리 가운데 휴암리식주거지는 한강 이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중부지역의 송국리문화 형성 및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주목되는 자료이다.
토광묘는 무덤의 형태와 화분형토기, 세형동검, 환두소도, 철극, 재갈 등 껴묻거리의 양상은 서북한지역과 관련이 깊다. 이것이 낙랑군 설치 이전의 고조선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랑군의 물질문화에 속하는 지에 따라 그 시기와 성격이 달라진다. 달전리유적의 토광묘가 고조선 또는 낙랑 가운데 어느 쪽으로 판명되든지 간에 한국 상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