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노은동취락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주거지 12기로 구성된 마을유적이며, 중기에는 주거지 2기만 존재했다. 이어서 원삼국시대에는 수혈 주거와 고상건물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무덤 5기가 분포했으며 고려시대는 무덤 1기만 확인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건물과 수혈 가옥, 그리고 무덤이 들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유적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의 평탄한 해발 70m 구릉의 상면과 사면에 입지하며, 1997년부터 1998에 걸쳐서 충남대학교박물관을 비롯하여 한남대학교박물관,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A지역에서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2기, 고려시대 토광묘 1기, 조선시대 주거지 1기 및 건물지 적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B지역에서는 3개 구역에서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구 60여 기가 조사되었는데, 이 중 청동기시대 유구는 세장방형 평면에 위석식노지, 주초석식 기둥배치를 특징으로 하는 주거구조에 이중구연토기와 공렬토기 등이 출토되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수혈주거지가 능선 상면 방향을 따라 남북으로 12기 확인되었으며, 구릉 북쪽 끝부분에서는 송국리형 원형주거지 1기와 방형주거지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구는 구릉 상면과 사면에서 장방형 또는 방형 평면의 수혈주거지 14기가 조사되었다. 그리고 동서 및 남북 길이 약 30m되는 범위 안에 기둥구멍으로 보여지는 수십개의 작은 원형 구멍들은 지상가옥 또는 의례 등 특수 행위와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그 밖에 구릉의 북쪽에서 서기 5세기 전반 무렵의 삼국시대 백제 토광묘 3기가 조사되었으며, 조선시대의 건물지 2기와 수혈주거지 11기 등도 조사되었다.
노은동유적은 둔산유적과 함께 대전지역의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취락 가운데 하나이다. 전기 주거지 12기는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평면에 위석식노지(圍石式爐址), 주초석식(柱礎石式) 기둥배치를 특징으로 하는 주거구조이며 이는 ‘둔산식 주거지’로 명명되어 있다. 토기는 가락동식토기로 불리는 것으로 겹아가리와 짧은 빗금무늬가 베풀어진 이중구연단사선문(二重口緣短斜線文)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노은동유적의 주거지에서 구멍무늬가 있는 토기, 즉 공렬토기(孔列土器)가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와 함께 나온 점은 주목된다. 차령산맥의 동남쪽에 있는 대전, 청주지역에서는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문화의 핵심 분포지역이며, 반면에 서북쪽에 있는 천안, 아산지역에서는 공렬토기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노은동유적의 둔산식주거지에서 출토된 공렬토기는 차령산맥 경계로 하는 충청서북부지역과 충청동남부지역의 교류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만 있고 무덤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당시의 생업경제를 화전(火田) 농경과 관련시키는 연구자들은 가락동유형 취락의 정주도를 낮게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가락동식토기와 둔산식주거지를 표지로 하는 가락동유형의 마을유적이다. 대전분지를 포함하는 중서부지역 청동기문화의 전개양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유적이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와 백제 무덤 역시 각각 대전지역의 마한 또는 백제와 관련된 정치체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것으로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