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가평 대성리 유적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구덩이·경작유구 등이 발굴된 취락유적이다.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집자리와 구덩이, 경작 유구 등이 조사되었는데, 특히 원삼국시대 마을에서 철손칼, 철낫 등 다양한 유물과 재가공된 철기와 미완성품, 제작 과정 중 파생된 철편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낙랑계 토기와 야요이계 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국제적인 대외 교역 및 교류를 검토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낙랑군 설치 이전에 해당하는 고조선의 물질문화라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어서 향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정의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구덩이·경작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내용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덧띠무늬토기[突帶文土器]와 관련되는 이른 시기 집자리부터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와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되는 중기의 이색점토구역이 있는 집자리까지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이른 시기 유구는 작은 방형의 집자리와 구덩이가 있으며, 여기에서 주조철부(鑄造鐵斧), 화분모양 토기,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갑옷에 이용된 철제 소찰(小札)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에 대해서 서기전 2세기 말에서 1세기에 걸치는 시기로 낙랑군과 관련된다는 견해가 있으며, 이와 달리 낙랑군 설치 이전인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원삼국시대 늦은 시기의 집자리는 여자(呂字)형 또는 철자(凸字)형 집자리가 대부분이다. 집자리 내부 시설 가운데에는 화덕자리만 있는 것이 가장 많으며, L자형의 온돌이 있는 것과 벽쪽에 부뚜막이 있는 것도 일부 확인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가옥의 축조 과정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정보도 확보되었는데, 주거지 내부의 중앙에서 관찰되는 기둥 구멍은 지붕구조를 받치기 위해서 임시로 설치한 기둥과 관련될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은 경질무문의 중도식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주류이며, 외래계 토기들은 낙랑계토기가 대부분이고, 산동반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백색토기도 확인되었다. 이 밖에 서기 2세기대의 야요이계토기인 굽다리 접시〔高杯〕도 나왔다. 낙랑 등 중국 한나라와 관련된 유물과 일본 야요이시대 토기의 존재는 대성리마을이 대외 교역 또는 교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철손칼(철도자(鐵刀子)), 쇠낫, 철부, 철착, 철촉, 철침, 철제자귀, 철제삽날, 철제낚시바늘, 수정, 가락바퀴(방추차) 등이 나왔다. 한편 이 유적에서는 철괴, 재가공된 철기와 미완성품, 제작과정 중 파생된 철편 등이 다수 출토된 점에서 볼 때, 철기의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시대 석실분에서는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 대부완(臺附盌), 철제집게, 철낫, 철끌, 철손칼, 방추차 등이 나왔는데, 신라가 이 지역을 지배한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집게와 끌, 숫돌 등 단조(鍛造)철기 제작과 관련된 단야구(鍛冶具) 세트가 나온 것은 원삼국시대에 이어서 삼국시대에도 이 마을에서 철기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가평 대성리유적Ⅱ』(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1)
- 『가평 대성리유적』(경기문화재연구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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