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대성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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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구덩이 · 경작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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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구덩이 · 경작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가평대성리유적은 북한강변의 충적지에 위치하며 현재의 대성리역 주변에 해당한다. 경기문화재연구원(현, 경기역사문화유산원)과 겨레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마을 유적을 확인하였다. 원삼국시대 마을 조사에서는 중국 한나라의 낙랑군 설치 이후 시기, 또는 그 이전의 물질자료가 다수 나왔으며 일본 야요이시대의 토기도 존재하는 점에서 볼 때, 당시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그리고 철기제작과 관련된 자료도 상당수 확인되어 원삼국시대의 철기생산기술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내용

가평대성리유적은 북한강변의 충적지에 위치하며 경춘선 복선전철 사업구간에 대한 경기문화재연구원(2004∼2006년)과 겨레문화유산연구원(2008∼2009년)의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마을 유적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구로 집자리 27기, 구덩이 6기, 경작 유구 1개소가, 원삼국시대의 유구는 집자리 43기, 구덩이 56기, 굴립주(掘立柱) 3기, 도랑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삼국시대 신라의 석실묘(石室墓) 2기, 조선시대의 집자리 1기, 구들 유구 1기 등도 조사되었다. 그리고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조사구역에서는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집자리 11기를 비롯하여 구덩이 11기, 도랑 유구 1기, 소형 구덩이군 4개소, 삼국시대 석실묘 1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덧띠무늬토기[突帶文土器]와 관련되는 이른 시기 집자리부터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와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되는 중기의 이색점토구역이 있는 집자리까지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이른 시기 유구는 작은 방형의 집자리와 구덩이가 있으며, 여기에서 주조철부(鑄造鐵斧), 화분형토기,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갑옷에 이용된 철제 소찰(小札)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에 대해서 서기전 2세기 말에서 1세기에 걸치는 시기로 낙랑군과 관련된다는 견해가 있으며, 이와 달리 낙랑군 설치 이전인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원삼국시대 늦은 시기의 집자리는 여자(呂字)형 또는 철자(凸字)형 집자리가 대부분이다. 집자리 내부 시설 가운데에는 화덕자리만 있는 것이 가장 많으며, L자형의 온돌이 있는 것과 벽쪽에 부뚜막이 있는 것도 일부 확인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가옥의 축조 과정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정보도 확보되었는데, 주거지 내부의 중앙에서 관찰되는 기둥 구멍은 지붕구조를 받치기 위해서 임시로 설치한 기둥과 관련될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은 경질무문의 중도식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주류이며, 외래계 토기들은 낙랑계토기가 대부분이고, 산동반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백색토기도 확인되었다. 이 밖에 서기 2세기대의 야요이계토기인 굽다리접시〔高杯〕도 나왔다. 낙랑 등 중국 한나라와 관련된 유물과 일본 야요이시대 토기의 존재는 대성리마을이 대외 교역 또는 교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철손칼[鐵刀子], 철낫, 철부, 철착, 철촉, 철침, 철제자귀, 철제삽날, 철제낚시바늘, 수정, 방추차 등이 나왔다. 한편 이 유적에서는 철괴, 재가공된 철기와 미완성품, 제작과정 중 파생된 철편 등이 다수 출토된 점에서 볼 때, 철기의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시대 석실분에서는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 대부완(臺附盌), 철제집게, 철낫, 철끌, 철손칼, 방추차 등이 나왔는데, 신라가 이 지역을 지배한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집게와 끌, 숫돌 등 단조(鍛造)철기 제작과 관련된 단야구(鍛冶具) 세트가 나온 것은 원삼국시대에 이어서 삼국시대에도 이 마을에서 철기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가평대성리유적은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집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유적으로 북한강유역의 충적지에 형성된 마을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원삼국시대 마을에서는 철기 제작과 관련된 자료가 다수 확인되어 당시의 철기 생산기술에 대한 유익한 정보가 확보되었다. 그리고 외래계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낙랑군을 비롯한 중국 한나라 계통의 유물과 일본의 야요이계토기는 당시의 국제적인 대외 교역 및 교류 관계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외래계 유물 가운데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자료에 대해서는 낙랑군과 관련되는 원삼국시대로 파악하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가평 달전리유적과 더불어 대성리의 이른 시기 자료는 낙랑군 설치 이전에 해당하는 고조선의 물질문화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는 당시 이 지역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이나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쟁점 사항으로 향후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에서 주목되는 고고학 자료이다.

참고문헌

『가평 대성리유적Ⅱ』(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1)
『가평 대성리유적』(경기문화재연구원, 2009)
집필자
이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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