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내용
청동기시대 장방형 주거지는 내부에 돌을 돌려서 만든 화덕시설인 위석식 화덕자리(圍石式爐址)와 기둥을 세우기 위한 초석(礎石)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형태는 둔산식주거지로 불리는 것으로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유역에서 유행한 주거구조이다. 장방형 주거지에서는 겹구연〔二重口緣〕과 짧은사선문〔短斜線文〕이 시문된 가락동식토기와 이단병식 간돌검(마제석검), 삼각만입 돌살촉(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 및 원형 주거지는 내부에 타원형수혈과 중심 2기둥이 있는 송국리식주거지로 청동기시대 중기에 유행한 형식이다. 원형주거지에서는 외반구연의 민무늬토기(무문토기)와 구순각목토기, 원형 덧띠토기(점토대토기), 두형토기 등의 토기류와 홈자귀(유구석부), 삼각형 돌칼(석도), 일당경식석촉 등 석기류가 나왔다. 원형점토대토기와 두형토기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궁동 유적의 주거지는 중기에서 후기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후기의 목관묘에서는 원형점토대토기와 항아리(호), 그리고 석제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무덤은 주구(周溝), 즉 도랑이 있거나 없는 토광묘이며 매장주체부의 형태는 덧널무덤(목곽묘)와 목관묘가 있다. 규모가 가장 큰 10호 주구목곽묘(周溝木槨墓)에서는 둥근밑짧은목항아리(원저단경호)와 철착, 철촉, 철부 등이 껴묻거리(부장품)로 확인되었다. 백제시대 무덤은 횡혈식석실묘와 석곽묘가 있으며 대부분 관고리와 관못이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석곽묘에서는 인화문이 있는 토기 뚜껑과 관못이 나왔으며, 고려시대 석곽묘에서는 2면이 납작한 편병(扁甁)과 청동완과 관못이 나왔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목관묘에서는 백자를 비롯해서 숟가락, 젓가락, 관못, 구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원삼국시대의 주구토광묘와 백제시대의 무덤은 그 규모와 군집양상으로 볼 때, 대전지역의 마한시기와 백제 사비기 정치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 『궁동』(충남대학교박물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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