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궁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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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궁동 유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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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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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시도기념물.
내용

대전광역시 유성구 궁동 임242-2번지 일원의 해발 67m 되는 구릉 남사면에 위치하며 충남대학교 정문 서편에 해당한다. 충남대학교박물관이 1999년 발굴하였으며, 청동기시대 전기의 장방형 주거지 3기와 중-후기의 방형 및 원형 주거지 10기, 집석유구 1기, 석관묘 2기, 목관묘 1기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원삼국시대 주구토광묘 14기, 토광묘 5기, 백제시대 옹관묘 1기, 횡혈식석실분 3기, 석곽묘 25기,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가 있으며, 이 밖에 조선시대 목관묘도 3기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궁동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장방형 주거지는 내부에 돌을 돌려서 만든 화덕시설인 위석식노지(圍石式爐址)와 기둥을 세우기 위한 초석(礎石)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형태는 둔산식주거지로 불리는 것으로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유역에서 유행한 주거구조이다. 장방형 주거지에서는 겹구연〔二重口緣〕과 짧은사선문〔短斜線文〕이 시문된 가락동식토기와 이단병식마제석검, 삼각만입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 및 원형 주거지는 내부에 타원형수혈과 중심 2기둥이 있는 송국리식주거지로 청동기시대 중기에 유행한 형식이다. 원형주거지에서는 외반구연의 무문토기와 구순각목토기, 원형점토대토기, 두형토기 등의 토기류와 유구석부, 삼각형석도, 일당경식석촉 등 석기류가 나왔다. 원형점토대토기와 두형토기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궁동유적의 주거지는 중기에서 후기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후기의 목관묘에서는 원형점토대토기와 호, 그리고 석제 검파두식(劍把頭飾)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무덤은 주구(周溝), 즉 도랑이 있거나 없는 토광묘이며 매장주체부의 형태는 목곽묘와 목관묘가 있다. 규모가 가장 큰 10호 주구목곽묘(周溝木槨墓)에서는 원저단경호와 철착, 철촉, 철부 등이 껴묻거리로 확인되었다. 백제시대 무덤은 횡혈식석실묘와 석곽묘가 있으며 대부분 관고리와 관못이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석곽묘에서는 인화문이 있는 토기 뚜껑과 관못이 나왔으며, 고려시대 석곽묘에서는 2면이 납작한 편병(扁甁)과 청동완과 관못이 나왔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목관묘에서는 백자를 비롯해서 숟가락, 젓가락, 관못, 구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궁동유적의 장방형 주거지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가락동유형에 속하는 것이며, 유물 가운데 피홈[血溝]이 있는 이단병식마제석검(二段柄式磨製石劍)은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비정되고 있다. 송국리식주거지는 청동기시대 중기에 유행한 유물과 함께 점토대토기, 두형토기 등과 같은 후기의 유물도 함께 나온 점에서 볼 때, 중기에서 후기로 이행되는 전환과정을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원삼국시대의 주구토광묘와 백제시대의 무덤은 그 규모와 군집양상으로 볼 때, 대전지역의 마한시기와 백제 사비기 정치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궁동』(충남대학교박물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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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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