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봉동유적은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개성공업지구 내에 위치한다.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과 북한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2004년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원삼국시대 집자리 1기, 고려시대 건물지 4기와 온돌 유구, 고려-근대의 토광묘 19기, 회곽묘 13기, 화장묘 2기, 석곽묘 1기 등을 확인하였다.
원삼국시대 집자리는 개성공업지구 1단계 사업지구중 2지점에 위치하며, 이는 임진강 지류에 해당하는 사천강 부근 해발 23m의 낮은 구릉 계곡부에 입지한다. 유구의 평면 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장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다. 규모는 동서 폭이 8.4m이며 남북 길이는 남쪽이 파괴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남아 있는 길이는 10.3m로 대형에 속한다. 깊이는 30㎝ 내외이다. 집자리 바닥은 황갈색점토를 불처리하여 단단하게 하였다. 바닥 상면에서는 전면적으로 탄화목재가 노출되었으며 탄화목재는 대부분 원목 그대로이지만 일부 각재로 가공한 것도 있다. 가옥 내부 시설로 온돌, 화덕, 벽도랑, 기둥구멍, 토기 저장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온돌은 집자리 동벽에서 ‘ㄱ’자형으로 조사되었으며, 벽체는 여러 매의 긴 판석을 세워 만들었다. 화덕은 집자리 중앙 장축선에서 약간 북쪽에 치우쳐 무시설식 화덕자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중도식토기로 부르는 경질무문토기와 격자문타날문토기, 쇠뿔형손잡이, 철도자(鐵刀子) 등이 출토되었다.
이 집자리에서 4점의 목탄을 수거하여 측정한 방사성탄소연대 값은 서기전 170-서기 60년, 서기 20-230년, 서기 230-340년, 서기전 20-서기 130년(각각 1시그마 68.2%값에 해당)으로 나왔다. 봉동유적 집자리의 시기와 관련하여 보고자는 다양하게 나온 절대연대값을 고려하면서 집자리 형태와 유물 등을 남한의 자료와 비교할 때, 서기 1세기 무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개성 봉동유적에서 발굴된 집자리 구조와 출토유물은 서울, 경기지역 및 강원지역의 원삼국시대 문화 양상과 유사하다. 이는 개성 일대에서 처음 확인된 원삼국시대 집자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중부지역의 고고학 자료와 당시 정치체의 범위와 성격을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