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원북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개설

논산 원북리유적은 중앙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한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마을은 생활구역(가옥, 저장구덩이, 토기제작 소성유구)과 매장구역(무덤)이 분리되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초기철기시대의 무덤에서는 주로 청동기가 나왔는데, 이 가운데 주조철기와 청동기가 함께 나온 무덤도 있다. 원북리유적의 중국 전국계 주조철기는 충청지역의 당진 소소리, 부여 합송리, 공주 수촌리유적과 비슷한 양상으로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철기로 평가되고 있다.

내용

논산 원북리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며 2001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4개 지구로 나누어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총 39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가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 석관묘 6기를 비롯하여 삼국시대 백제 무덤 5기(석곽묘 1기·널무덤 3기·옹관묘 1기),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 15기(석곽묘 3기·널무덤 11기·회곽묘 1기), 그리고 기타유구 1기를 포함하여 모두 2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나지구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무덤 8기(적석목관묘 1기·널무덤 7기), 백제시대 유구 64기(집자리 20기·널무덤 1기·구덩이 43기),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 15기(널무덤 13기·회곽묘 2기)와 기타유구 1기 등 모두 87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다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 유구 25기(집자리 7기·구덩이 15기·소성유구 3기), 초기철기시대 널무덤 1기, 백제시대 유구 149기(집자리 18기·구덩이 131기),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 100기(널무덤 99기·회곽묘 1기)와 기타유구 1기 등 모두 276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라지구에서는 백제시대 집자리 2기와 구덩이 1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7기의 형태는 원형이나 타원형을 띠며 그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 또는 중앙2주공(柱孔)이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집자리들 중에서 바닥면에 화덕자리가 있는 것은 2기에 불과하다. 집자리 주변에 분포하는 15기의 원형 또는 타원형의 구덩이들은 곡물 저장시설로 판단되는 것들이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다-118호 구덩이는 원형 평면에 플라스크형 단면을 가지며 규모는 382×339×143(잔존깊이)㎝이다. 토기 제작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소성(燒成) 유구 3기는 저장구덩이와 마찬가지로 집자리들이 있는 구릉에서 확인되었다. 1호 소성유구의 경우는 저장구덩이가 폐기된 이후 이를 재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덩이 벽면은 점토를 발랐으며 토기를 굽는 과정에서 단단하게 소토화(燒土化) 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은 집자리, 저장구덩이, 소성유구가 있는 구릉과는 150m 정도 떨어진 가지구에서 돌널무덤[石棺墓] 6기가 조사되었다. 1호 석관묘는 바닥에 토기편을 깐 것이 특징적이다. 집자리, 구덩이, 소성유구, 그리고 석관묘에서는 외반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토기(松菊里式土器), 붉은간토기, 삼각형석도, 홈자귀[有溝石斧], 화살촉, 석검, 숫돌,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원북리유적의 청동기시대 유구는 모두 중기에 해당한다.

초기철기시대 유구는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1기와 목관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널무덤 8기 등 모두 9기가 조사되었다. 무덤 부장품으로는 흑색간토기와 무문토기와 같은 토기류와 함께 세형동검을 비롯하여 세문경(細文鏡), 동착(銅鑿), 동부(銅斧), 동사(銅鉈), 검파두식(劍把頭飾) 등 다양한 청동기가 나왔다. 다지구 1호 널무덤와 같이 세형동검, 세문경과 철부(鐵斧)가 공반된 무덤도 있다. 주조(鑄造) 철기와 청동기와 함께 출토된 사례는 당진 소소리, 부여 합송리, 공주 수촌리유적의 양상과 유사하다.

의의와 평가

논산 원북리유적의 청동기시대 유구는 생활공간과 무덤만으로 이루어진 매장공간으로 분리되어 입지하고 있어 당시의 취락구조를 살피는 데 양호한 자료로 평가된다. 초기철기시대 유구는 무덤만 조사되었는데 토기와 청동기가 부장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철기와 청동기가 함께 부장된 것도 있다. 주조철부와 세형동검, 세문경, 동착, 검파두식이 공반된 무덤은 당진 소소리, 부여 합송리, 공주 수촌리유적과 유사한 양상으로 초기철기문화의 유입과 전개양상을 검토하는 데 중요하다. 중국 전국시대에 속하는 연나라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서북한지역 및 남한지역으로 철기가 들어오는데, 이 시기의 철기문화는 고조선과 관련된다는 견해가 있다.

참고문헌

『논산 원북리유적』(중앙문화재연구원, 2001)
집필자
이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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