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안인리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여 · 철 자 모양 집터,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철기 등이 출토된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마을 유적이다. 1990∼1991년 강릉대학교, 강원대학교, 관동대학교(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등 3개 대학 박물관과 2017년 중부고고학연구소가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집터 39동을 발굴 조사하였다. 강릉안인리유적은 전체 규모가 밝혀진 마을 유적으로서, 영동 지역에서 여 자 모양 집터와 아궁이식 화덕이 처음 발견되었다.
강릉안인리유적(江陵安仁里遺蹟)은 영동화력발전소 회탄처리장 건설에 앞서 강릉대학교, 강원대학교, 관동대학교(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등 3개 대학 박물관이 공동으로 1989년 12월 21일부터 1990년 2월 28일까지 1차 발굴 조사를 하였고, 1990년 7월 1일부터 1991년 6월 30일까지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A지구(강원대학교)와 B지구(강릉대학교)에서 원삼국시대 여 자 모양〔呂字形〕 15동, 철 자 모양〔凸字形〕 22동 등 37동의 집터와 신라 무덤 6기, 독무덤 2기가 발견되었다. C지구(관동대학교)에서는 유구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2017년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강릉 안인화력 1 · 2호기 건설을 위한 발굴 조사 가운데 강릉안인리유적과 맞닿아 있는 B지점에서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 1기, 원삼국시대 집터 2동과 조선시대 건물터를 조사하였다. 중부고고학연구소의 조사는 강릉안인리유적의 전체적인 범위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강릉안인리유적은 행정구역상 명주에 속해 있었으나 1995년 1월 명주군이 강릉시와 통합하면서 유적 명칭이 변경되었다.
강릉안인리유적은 총 7개의 층위(層位)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문화층(文化層)은 3개로 아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 중간층과 위층은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문화층이다. 중간층(안인리 제Ⅰ기)에서는 여 자 모양 집터가 주로 확인되었고, 위층(안인리 제Ⅱ기)에서는 철 자 모양 집터가 주로 확인되어 시간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철 자 모양과 여 자 모양 집터가 일정 기간 공존하고 있던 시기도 있다.
집터의 화덕자리는 점토띠식, 점토둑식, 아궁이식, 부석식 등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낙랑계토기(樂浪系土器), 철기 등이 있다. 한편 8호, 14호, 15호, 18호, 19호, 23호 집터 등 마을의 남쪽 지역에서 송풍관(送風管)이 출토되었다.
강릉안인리유적은 영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한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마을 유적으로서, 한반도 중부 동해안 지역 원삼국시대 집터의 발달 과정과 생활상, 철기 생산 활동 등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영동 지역에서 여 자 모양 집터와 아궁이식 화덕이 처음으로 조사된 사례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인리 제Ⅰ기층은 주로 원삼국시대에 해당하고, 안인리 제Ⅱ기층은 삼국시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