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에 있는 여 · 철자모양 집터,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철기류 등이 출토된 원삼국시대 마을 유적이다. 둔내고등학교의 학교 건물 기초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983년 강원대학교박물관, 1996년 강릉대학교박물관, 2006년 강원문화재연구소, 2018년 국강고고학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3세기대에 해당하는 원삼국시대 여 · 철 자 모양 집터 10동과 수혈 3기가 확인되었다.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1983년 둔내고등학교에서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수습되어 알려진 유적이다. 1983년 5월 3일부터 같은 해 6월 8일까지 강원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집터 3동과 수혈(竪穴) 1기를 조사하였다.
이후 1996년 9월 3일부터 같은 해 10월 31일까지 둔방내리 문화마을 조성 공사 이전에 강릉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5동을 추가로 조사하였다. 또한 2006년 11월 9일부터 같은 해 12월 13일까지 둔내고등학교 체육관 건축공사에 앞서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5동과 수혈 1기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2018년 11월 7일부터 같은 해 11월 29일까지 둔내중고등학교 체육관 건축공사에 앞서 국강고고학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1동과 수혈 1기를 조사하였다. 현재까지 총 14동의 집터와 3기의 수혈이 조사되었다.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에서 발견된 14동의 집터는 주축 방향에 따라 시기가 다른 두 개의 마을이 확인되었는데 제1주거군은 N67.73W이고, 제2주거군은 N47.76W이다.
집터의 형태는 강릉대학교 2호(10.6m×6.4m), 강원문화재연구소 1호(13.4m×8.6m) 및 국강고고학연구소(11.95m×7.42m)가 여자(呂字) 모양인데, 출입구가 파괴된 나머지 집터의 뒷벽이 공통적으로 둔각상을 띠고 있는 점에서 대부분이 여 · 철자(呂 · 凸字)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의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와 벽채 시설이 있다. 화덕자리는 집터의 뒷벽 방향으로 치우친 중앙에 냇돌을 깔고 뒤쪽에 불막음돌을 세운 후, 화덕자리 주위에 점토둑을 쌓아 만든 소위 중도식 화덕자리이다.
벽채는 벽면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기둥을 배치한 것(강릉대학교 3호 · 5호, 국강고고학연구소)과 벽채를 판재로 세워 보강한 것(강원대학교 3호, 강릉대학교 1호 · 2호 · 4호) 등 두 가지 구조가 발견되었다.
집터 내 출토 토기류 가운데 중도식 민무늬토기는 아가리가 길게 밖으로 구부러진 긴몸통독, 바리, 미니어쳐 시루, 짧은목항아리 등이 있고,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는 계란모양토기, 시루, 깊은바리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철기는 쇠화살촉, 쇠낫, 쇠손칼 등이 출토되었다. 국강고고학연구소 집터에서는 97점의 유리옥이 출토되었다.
횡성 둔내 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집터의 구조와 형식 및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3세기대 마을로서, 집터와 출토 유물이 북한강 유역 및 영동 지역에서 확인된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파주, 김포, 화성, 안성, 평택 등 중부 지역의 서쪽에서 발견되는 원삼국시대 방형 집터와는 크게 다르다. 횡성 둔내마을은 남한강 유역(섬강)까지 여 · 철자 모양 집터가 분포함을 확인시켜 준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2003년 1월 18일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