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종(咸從). 여도만호(呂島萬戶)가 되었으며 1564년(명종 19)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진해(鎭海) 여러 진(鎭)의 막하(幕下)가 되어, 해로의 험애(險隘: 험준하고 좁음)를 자세히 조사하여 선박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다. 1592년(선조 25) 5월 광양현감으로서 이순신(李舜臣)의 수로를 인도하였다.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棋)와 함께 거제 앞바다에서 원균(元均)과 합세하여, 옥포 앞바다에서 왜선 30여척을 불사르고 적진포(赤珍浦)에서 왜선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해 전공을 인정받아 통정(通政)에 가자되었다.
이듬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 의하여 조방장(助防將)에 임명되었다. 1594년 전염병에 걸려 한산 통제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책록(策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