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성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전적, 집의, 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보(敬甫)
  • 동강(桐江)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영월(寧越)
  • 사망 연도1628년(인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교리(副校理)|전적(典籍)|집의(執義)|부응교(副應敎)
  • 출생 연도1575년(선조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용걸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엄성 글씨 미디어 정보

엄성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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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전적, 집의, 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경보(敬甫), 호는 동강(桐江). 증 통례 엄용화(嚴用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정 엄서(嚴曙)이고, 아버지는 평시서직장(平市署直長) 엄인달(嚴仁達)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사복시정 심진(沈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이 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어 설서(說書)를 겸임하다가, 검열이 되었다. 1613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성균관을 비롯한 사관(四館: 성균관·예문관·승문원·교서관의 통칭)에서 이를 주장한 이위경(李偉卿) 등을 정거(停擧: 과거의 응시를 일정기간 정지시킴)시키는 처벌을 하도록 유생들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당한 뒤 양산에 퇴거하였다.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검열로 등용되었다. 1625년(인조 3) 사간을 거쳐 부교리(副校理)·전적(典籍)·집의(執義) 등을 역임하고, 1627년 부응교(副應敎)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동주집(東洲集)』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응천일록(凝川日錄)』

  • -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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