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경보(敬甫), 호는 동강(桐江). 증 통례 엄용화(嚴用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정 엄서(嚴曙)이고, 아버지는 평시서직장(平市署直長) 엄인달(嚴仁達)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사복시정 심진(沈鎭)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이 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어 설서(說書)를 겸임하다가, 검열이 되었다. 1613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성균관을 비롯한 사관(四館: 성균관·예문관·승문원·교서관의 통칭)에서 이를 주장한 이위경(李偉卿) 등을 정거(停擧: 과거의 응시를 일정기간 정지시킴)시키는 처벌을 하도록 유생들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당한 뒤 양산에 퇴거하였다.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검열로 등용되었다. 1625년(인조 3) 사간을 거쳐 부교리(副校理)·전적(典籍)·집의(執義) 등을 역임하고, 1627년 부응교(副應敎)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