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섭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강경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신간회 선전대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1년(고종 28)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강경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신간회 선전대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부여 출신. 1919년 강경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있을 때 군산의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인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해 듣고 3월 6·7일에 재직중인 창영학교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3월 10일 강경 장날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먼저 태극기 200여개를 제작하여 강경읍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0일 옥녀봉(玉女峰)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의 시위중 붙잡혀 강경만세시위운동의 주모자로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이 강경시위는 충청남도에서의 시위운동을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출옥 후 민족사상계몽대를 조직하여 그 대장으로 군산·만경·김제 등을 순회하며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부안에서 붙잡혔으며, 1929년 신간회(新幹會)의 선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투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경성복심법원판결문(京城覆審法院判決文)」
집필자
신재홍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