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 출신. 1919년 강경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있을 때 군산의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인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해 듣고 3월 6·7일에 재직중인 창영학교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3월 10일 강경 장날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먼저 태극기 200여개를 제작하여 강경읍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0일 옥녀봉(玉女峰)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의 시위중 붙잡혀 강경만세시위운동의 주모자로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이 강경시위는 충청남도에서의 시위운동을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출옥 후 민족사상계몽대를 조직하여 그 대장으로 군산·만경·김제 등을 순회하며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부안에서 붙잡혔으며, 1929년 신간회(新幹會)의 선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투옥되었다.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