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처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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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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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전(傳).
개설

저자가 40여 세 때에 쓴 5편의 전 중의 하나로, 사회제도의 모순을 파헤친 작품이다. 허균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실려 있다. 분량은 500여 자이다. 순한문으로 쓰여 있다.

「엄처사전」의 무대는 강릉이다. 불우한 한 선비의 일생을 통하여 특별한 재능이 있으면서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아쉬움을 서술한 전형적인 ‘전’ 양식의 작품이다.

내용

엄충정(嚴忠貞)은 강릉에 살고 있었다. 일명 ‘엄처사’로 불리는 이 사람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효심이 지극하여 손수 땔감과 음식을 마련하여 드렸다. 어머니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학문에도 힘써 몇 번이고 향시(鄕試)에 뽑혀서 진사가 될 정도로 통하지 않은 글이 없었다.

엄충정은 『주역』과 『중용』에 능통하여 대과에 응시하여도 능히 합격할 실력이었다. 그러나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로지 효도로 어머니를 위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살았다. 몇 번이고 조정에서 불렀으나 사양하고 초야에서 일생을 마쳤다. 엄충정이 78세로 죽자 동네사람들은 물론 사대부들 중에도 친소를 막론하고 그를 조문하였다.

의의와 평가

「엄처사전」은 허균의 5편의 ‘전’ 가운데에서 다른 4편의 작품과는 다른 점이 있다. 허균이 입전(立傳)한 인물들은 대부분 기인(奇人)·협사(俠士)의 이야기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의 ‘엄충정’은 기인·협사라기보다는 하나의 평범한 선비가 오직 효도를 그 본분으로 생각하면서 일생을 보낸 이야기이다.

허균이 작품에 등장시킨 인물은 한미(寒微: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함)한 계층의 출신이거나 서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불우한 일생을 산 사람들이다. 그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처자전」의 주인공은 생활은 곤궁하지만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효도와 학문에 전념한 인물이라는 것이 다르다.

허균은 「엄처자전」의 끝부분에서 평하기를 엄처사가 마땅히 벼슬을 얻어 경국(經國) · 제민(濟民)의 사업을 맡을 수 있는 선비임에도 불구하고,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곤궁하게 일생을 마친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이러한 고귀한 삶을 살다간 인물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쓴다고 하였다. 권력이 난무하던 난세의 인간군상들이 펼치는 명리추구에서 주인공으로 대치되는 상황 설정은 작자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의 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허균의 문학과 혁신사상』(신동욱 편, 새문사, 1981)
「허균의 전(傳)에 대한 연구」(강동엽, 『한국한문학연구』2, 한국한문학연구회, 1977)
「교산소설(蛟山小說)」(이재수, 『한국소설연구』, 선명문화사, 1969)
「허균연구」(김진세, 『국문학연구』2, 서울대학교국문학연구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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